한국불교신문 제 631호(2014년 12월 17일자) 번안시조

29. 漁笛[1] - 나의 반평생 지음일랑 백구만은 알리라

뱃전을 두들기며 한 가락 뽑는 어옹(漁翁)의 노래를 들으면 낭만이 물씬 풍겼다. 흥얼거리는 한 마디도 정서를 담아낸다고 할진데 구성진 노랫소리임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뱃전을 두들기는 장단이 제격임에도 한 술 더 떠서 피리 소리까지 겸했다면 천하의 일품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소리는 멀리 강가에 있던 나그네의 수심을 달래 주었고, 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의 마음도 한껏 사로잡았을 것은 뻔한 이치였겠다.
멀리 백구와 벗을 삼으면서 반평생의 지음(知音)일랑 저 백구만이 알리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漁笛(어적)[1]

孤帆風烟一竹秋 數聲暗逐荻花流
고범풍연일죽추 수성암축적화류

晩江落照隔紅樹 半世知音問白鷗
만강낙조격홍수 반세지음문백구

안개 낀 강 한 돛단 배 대나무 가을인데
갈대꽃을 따라서 피리 소리 흐르는구나.
낙조 진 저 너머에는 백구만이 지음 알며.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안개 낀 강에는 돛배 한 척이 한 대나무 가을인데
갈대꽃 따라서 피리 소리 흐른다네.
단풍 든 저 너머엔 낙조(落照)만이 지는데
나의 반평생 지음(知音)일랑 백구만은 알리라.

위 시제는 ‘고기잡이 어부의 피리소리’로 번역된다. ‘어부’가 하는 직업은 고기를 잡는다는 면에서는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지만 고기 잡는 방법 면에 있어서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멋진 노랫가락 한 대목을 뽑는가 싶더니만, 구성진 피리 소리를 더하여 듣는 이들의 낭만을 더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멀리서 들려오는 어부의 피리 소리를 듣고 깊은 잠에 취해 있다는 모습을 선뜻 상상하게 된다. 선경후정이라는 시적 구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저 멀리 안개 낀 강에는 돛배 한 척이 아늑하게 떠 있는데 휘날리는 갈대꽃을 줄줄이 따라서 한 곡조 피리 소리가 낭랑하게 흐르고 있다고 상상했다. 선경(先景)이라는 그림 한 폭을 잘 그렸다.
화자의 그림은 단풍 든 저 건너를 바라보며 낙조를 응시한다. 그러면서 천길 물속의 깊은 속내를 훤히 들여다 보는 것처럼 ‘나의 반평생 지음(知音)일랑 백구만은 알리라’ 라는 후정(後情)의 심회를 담아냈다.
이어지는 경련(頸聯)과 미련(尾聯)에서는 ‘가락 기막히니 둔세(遯世)의 꿈 어찌 견디랴 / 곡조 끝나도 애끊는 시름을 달래지 못하는데 // 그 소리 바람이 인 듯이 날려 내 가슴을 치는데 /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은 스러질 줄 몰라라’라고 음영했던 시상을 성큼 만나게 된다.

30. 漁笛[2] - 천지 가득한 쓸쓸함 스러질 줄 몰라라
어옹이 낚시 하러 나가려면 내자가 낚시 도구며 먹을거리를 챙겨주어야 한다. 거기에 막걸리 몇 사발 되는 술병까지 챙겨주면 제격이다. 아내가 있는 어옹은 그나마 다행이다. 홀로 사는 어옹은 그럴 수가 없다.
혼자 낚시 도구를 챙겨야 하지만, 술병인들 어쩌랴. 그럴 수가 없다. 동료 낚시 친구를 만나기가 바쁘게 한 잔 술을 청해보지만 그저 뒷머리만 보이는 동료를 가끔 만나면 낚시할 기분이 ‘싸악’ 가신다. 어옹이 피리를 부는 소리가 온 천지에 가득하여 쓸쓸함이 스러질 줄 모른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漁笛(어적)[2]

韻絶何堪遯世夢 曲終虛負斷腸愁
운절하감둔세몽 곡종허부단장수

飄掩律呂撲人冷 滿地蕭蕭散不收
표엄율려박인랭 만지소소산부수

둔세 꿈 못 견디어 애끊음 달래지 못해
그 소리 바람인 듯 내 가슴을 치는데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이 스러질 줄 몰라라.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락이 기막히니 둔세(遯世)의 꿈 어찌 견디랴.
곡조 끝나도 애끊는 시름 달래지 못하네.
그 소리 바람이 인 듯 날려 내 가슴을 치는데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 스러질 줄 몰라라.

위 시제는 ‘고기잡이 어부의 피리소리(2)’로 번역된다. 앞 연에서 ‘안개 낀 강에는 돛배 한 척이 떠 있는데 / 갈대꽃을 따라서 피리 소리 흐르는구나 // 단풍 든 저 너머엔 낙조(落照)만이 지는데 / 나의 반평생 지음(知音)일랑 백구만은 알리라’ 라는 선경후정을 잘 담아낸 시인은 이제 경련과 미련에서 어부의 마음속을 꿰뚫듯이 기막힌 심회를 쏟아 붓고 있다.
시인의 시상은 천길 물속에 헤엄쳐 들어가 모두 담아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부가 뽑아낸 그 가락이 기가 막히니 어둡고 고통스러운 둔세(遯世)의 꿈 어찌 견디랴 라고 쏟아내는 한(恨)스러움에 전생과 내생까지도 모두 착각하는 양 은은하게 들린다. 어부가 타는 한 곡조가 끝난다 하더라도 애끊는 시름을 달래지 못한다고 했다. 어옹의 마음속을 거울을 들여다 보듯이 훤히 보는 시상이다.
화자에겐 더 이상 가슴이 남아 있는 심회의 한 마디를 쏟아 부을 양으로 가슴을 치는 한을 담는다.
‘그 소리 바람이 인 듯 날려 내 가슴을 치는데 /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이 스러질 줄 몰라라’ 라는 미련(尾聯)의 호소 한마디다. 온 천지에 가득한 쓸쓸함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더 이상은 수습할 수가 없다는 시상이다. 나라 잃은 민족의 애환을 어부의 피리 소리에 담으려는 시심이겠다.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