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2014학년도 학위수여식에서 불교문예학 박사학위 취득

성철(性徹)스님(동두천 덕수사 주지)은 지난 2015년 2월 27일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2014학년도 학위수여식에서 불교문예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관세음보살묘응시현제중감로(觀世音菩薩妙應示現濟衆甘露)』에 나타난 불교사상(佛敎思想) 연구(硏究)’이다.

조선후기인 1872년부터 1875년까지 한양성내 사찰인 종로구 창신동에 소재한 감로암에서는 재가자들의 수행결사 ‘감로법회’가 열렸다. 이 감로법회의 법주는 보월거사 정관(正觀)이다.

감로법회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았고 남자가 54명, 여자가 90명 등 144명이 동참했다. 동참자 가운데는 양반도 있었다.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 있어서 결사는 모두 출가자인 승려가 그 주체가 되어 결성됐는데 ‘감로법회’만은 재가자가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결사법회의 소의경전이 바로 『관세음보살묘응시현제중감로(觀世音菩薩妙應示現濟衆甘露)』이다.

감로법주 정관이 관세음보살의 감응으로 법회 동참자들에게 강설한 법문이며 1877년 간행되었다. 『관세음보살묘응시현제중감로』는 우리나라에서 찬술된 불교문헌 가운데 경서체로 찬술되어져 있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관세음보살의 자비 정신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관세음보살묘응시현제중감로』를 최초로 완역(完譯)하고 연구한 성철스님은 “조선 후기 대중불교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귀중한 문헌으로 앞으로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관세음보살묘응시현제중감로』에 나타난 불교사상 연구’ 논문을 요약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중감로(濟衆甘露)’의 성립

『관세음보살묘응시현제중감로(觀世音菩薩妙應示現濟衆甘露, 이하 ‘제중감로(濟衆甘露)’』는 19세기 거사불교와 불교 전반에 걸쳐 종합불교를 행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 말기의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조선의 개항 전후(1872, 고종9년)로 불교계는 변화하면서 사상적으로 심오함과 평등함이 함께 어우러져 설해지고 있다.

비록 재가불자들의 결사이나 대승불교사상에 있어서 ‘백화점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 묘련사결사 감로법회는 1872년부터 4년에 걸쳐 삼각산 감로암과 삼성암, 진국사 등에서 관세음보살의 신묘력을 믿고 명호를 염송하고 염하는 재가불자들의 수행결사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서 「묘련사법려필항관음(妙蓮社法呂筆降觀音)」이라는 제목으로 감로법회(甘露法會)를 설명하고 있다. 이능화는 묘련사에서 결사를 결성하여 정진하는 거사들이 관세음보살이 응현하여 『제중감로』를 펴냈다고 밝히고 있다.

『제중감로』는 결사문(結社文)과 발원문(發願文)•성념명(聲念銘)•사규(社規)로 구성돼 있는 감로법회(甘露法會)와, 서(序), 연기문(緣起文), 그리고 본문이라고 할 수 있는 보월거사 정관이 강설한 4권 10품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중감로』는 감로법주 정관이 결사 동참자들과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칭념하여 정진 중에 감응으로 설한 법문집이다. 그러나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형식을 따라 설해진 것은 아니다. 대승경전들 가운데 『대방광불화엄경』과 비슷한 체계를 갖춘 것이 특이하다. 경서체로 찬술돼 우리나라의 불교문헌 중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보광거사(葆光居士) 보원(普圓)과 인담거사(印潭居士) 성월(性月)이 1권과 2권을 봉휘(奉彙)하고, 해월거사(海月居士) 성담(性湛)과 현허거사(玄虛居士) 자운(慈雲)이 3권과 4권을 봉휘하여 10품 4권 2책으로 엮어서 1877년에 간행한 책이다. 책의 표지에는 『濟衆甘露』라는 제첨(題簽)이 있고, 첫머리에는 순양자(純陽子)가 쓴 서문과, 인가(印伽)거사가 쓴 연기문이 실려 있다. 각권의 구성을 보면 권1에는 1품에서 4품, 권2에는 5품에서 7품, 권3에는 8품과 9上품, 권4에는 9下품과 10품이 실려 있다.

1872년 겨울 묘련사와 삼각산 감로암에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일심으로 칭념하니 감로법주인 보월거사 정관에게 강령(降靈)하여 「고해자우품(苦海慈雨品)」을 설했다. 다음 해 봄 감로암에서 「십종원신품(十種圓信品)」을 설하고, 그 해 가을 해인(海印) 장자 집에서 「보광연화품(普光蓮華品)」을 설했다.

그 해 겨울에 담연단(湛然壇)에서 「일체원통품(一切圓通品)」을, 보련정실(寶蓮淨室)에서 「여시게찬품(如是偈讚品)」을 설했다. 1874년 봄, 다시 감로암에 모여서 「묘현수기품(妙現授記品)」을 설하고, 여름에 여시관(如是觀)에서 「반본환원품(返本還源品)」을, 가을에 삼각산 삼성암에서 「무진방편품(無盡方便品)」을 설하였다.

1875년 봄 진국사(鎭國寺)에서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을, 다시 담연단에서 「전불가설품(轉不可說品)」을 설하였고, 그해 여름 여시관(유운의 서재명)에서 관음의 감응으로 품명을 정한다. 이렇게 4년 동안 7처 11회에 걸쳐 설해진 1부의 법문집이 탄생한다. 3년 후(1877) 교정하여 간행 때 부우제군이 무상단에서 서문을 썼다.

『제중감로』의 연기문에서 감로법회의 결성 연도를 추정할 수 있어 묘련사 결사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연기문 서두에 ‘同治壬申歲冬十一月 妙蓮社法侶諸人 設精進會于三角山之甘露菴 專念菩薩聖號 以期瑞應 赴感示現”라고 일자를 명기하고 있다. 이 일자를 추론하면 임신년 즉 1872년 겨울 11월 이전에 감로법회인 묘련사 결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감로암 법당에 봉안돼 있는 신중탱화 화기(畵記)에 탱화 조성 년대를 1867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감로암이 승려 도성출입 금지해제(1895년) 전에 도성 안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가 있다.

『제중감로』 작자와 봉휘 및 편집자

묘련사 결사의 봉휘자는 『제중감로』에 그 존칭과 법명이 기록돼 있다. 1, 2권의 봉휘자는 보광거사 보원(普圓)과 인담(印潭)거사 성월(性月)이며 3, 4권의 봉휘자는 해월(海月)거사 성담(性湛)과 현허(玄虛)거사 자운(慈雲)이다.

『제중감로』 봉휘자이고 편집하여 발행한 이는 보광거사 보원으로 월창 김대현(1823~1884)에게 사사를 받은 유운(劉雲)이다. 유운은 『한불전』 12권의 감로법회의 결사문(結社文) • 발원문(發願文) • 성념명(聲念銘) •사규(社規)를 편집하였다. 유운(1821~1884)은 불교와 도교를 회통하는 전형을 보여준 거사 겸 도사이다. 유운은 고종 19년(1882)에 친구인 김지도인이 『원해서범(願海西帆)』이란 정토사상 총서를 발행하자 발문을 지어 찬양하고 있다.

『조선불교통사』와 『조선도교사』는 보광거사 유운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에 대하여 법명이 아닌 속명으로 밝히고 있다. 최성환(崔瑆煥), 정극경(丁克慶), 유성종(劉聖鍾) 등이 바로 그들이다.

최성환(1813~1891)의 자는 성옥(星玉)이며, 호는 어시재(於是齋)이다. 무과 출신이 많은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관직은 도사(都事)에 봉직하였다. 감로법회 봉휘자 중 한 명이었던 유성종은 삼성암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유성종에 관한 자료는 1943년 태흡스님이 폭우로 무너진 삼성암을 중건하면서 봉정한 <화계사 삼성암 중건기(華溪寺 三聖庵 重建記)>에 나타난다.

정극경(1839년~1894)은 『제중감로』의 봉휘자 가운데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으로 보여 진다. 정극경은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해 진사에 등극하였다. 정극경은 김포군수로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신분관계를 떠나 재가불자 수행결사인 묘련사 결사에 동참하였다.

『제중감로』의 구조

『제중감로』의 서(序)는 “중생과 부처는 본래 두 이치가 아니며, 성품과 모습은 원래 하나의 꾸러미에 있다.”로 시작한다. 서두에 화엄경의 불이사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결사의 동참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묘력을 믿으며 감로법주 정관의 자비로움을 믿고 수행하여 예토를 떠나 정토인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법회의 결사가 이루어진 동치(同治) 임신년 겨울 11월, 삼각산 감로암에서 결사 동참자들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일심으로 칭념한다. 이때 감로법주 보월거사 정관에게 관세음보살이 감응하여 「고해자우품(苦海慈雨品)」을 설하라는 명을 따라 강설을 시작한다. 묘련사 결사 감로법회의 소의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제중감로』는 이렇게 하여 설해지기 시작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 수월관음도. 고려 1310년. 430cm×254cm.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첫째는 고해자우품(苦海慈雨品)으로 중생세계는 고통의 바다이니 관세음보살의 신묘력으로 제도한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보문품」과 『능엄경』의 관세음보살의 응신은 서로 다르게 표현되고 있으나, 『제중감로』 모두가 중생을 자비로 살핌은 다르지 않음을 설하고 있다.

두 번째는 십종원신품(十種圓信品)으로 원만한 믿음은 열 가지가 있다고 설하고 있다. 이 열 가지의 믿음을 수기 원신이라 한다. 원만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비원력(悲願力)과 감응력(感應力), 정묘력(淨妙力)을 내어서 삼매에 들라하고 있다. 이렇게 행하면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과 영명진여심(靈明眞如心), 본연공경심(本然恭敬心)의 세 가지 마음이 일어나서 장애가 사라지면 이때 비로소 열 가지 원만한 믿음이 일어나게 된다.

세 번째는 보광연화품(普光蓮華品)으로 감로법회(甘露法會)에 동참한 모든 동참자는 연화세계에 있음과 같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중생의 생활을 바다에 비유하고 피안을 절벽으로 비유하여, 관세음보살의 덕화는 시방세계에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고 했다.

네 번째는 일체원통품(一切圓通品)으로, 게송을 설하고 나서 감로법주 정관은 원만하고 한량없는 법문이 모든 문에 다하도록 통한다며 열 가지를 설한다. 이를 십종원통법문이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일체가 원만하게 통하는 것이라 한다.

다섯 번째 여시게찬품(如是偈讚品)에서는 감로법주가 커다란 자비심을 내어 법계를 세워서 일체 중생에게 헤아릴 수 없는 깨달음의 문을 열어주는 게(偈)를 설한다.

여섯 번째 묘현수기품(妙現授記品)에서는 감로법주 정관이 감로법회 묘련사 관음결사의 법려(法侶)인 동참자들에게 게송으로 전법하는 품이다. 동참자 144명에게 한명 한명 모두에게 게송으로 전법을 해준다. 법명을 기준으로 성별을 구분해보면 남자가 54명 여자가 90명이다.

일곱 번째 반본환원품(返本還源品)에서는 보원이 법회에 동참하여 정진하는 대중들을 대표하여 감로법주 정관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감로법주에게 참다운 감로의 법을 구하는 방편을 묻는 것으로, 어떻게 하여야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여 관음을 따를 수 있을지를 물으며, 그 방법으로 화엄경과 법화경을 따라 구하면 되는지를 묻고 있다. 감로법주는 불신(佛身)은 원만함이 허공과 같고 본래부터 법이 온 곳이 없다고 답한다.

여덟 번째는 무진방편품(無盡方便品)으로 한량없는 방편으로 제도한다 하고 있다. 동참자들이 보살의 지혜지에 들어가지 못하니 그 수행법을 질문하고 있다. 첫째 어떻게 법에 도달하며, 둘째 보살도를 어떻게 수지하며, 셋째 보살행을 어떻게 닦아야 하며, 넷째 어떤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각각 열 가지의 병통을 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열 가지 방편도 설하니 그 처방법은 바로 관세음보살의 자비사상인 중생제도로 회향시키고 있다.

아홉 번째는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는 불가사의하다면서 설하고 있다. 상품에서 감로법회에 동참하여 정진하는 도반들에게 구법(求法)•청법(請法)•청법(聽法)•문법(問法)•염불(念佛)•관불(觀佛)•멱불(覓佛)•견불(見佛)을 알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결속을 하기 위한 방편도 되지만 동참자들을 대자대비의 사상으로 지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하품에서도 상품과 같이 비유를 들어 설하고 있다. 하품은 부처님이 설하고 강조하신 ‘오종대은명심불망’ 가운데 충효사상을 비유를 들어 설하고 있는 것이다.

열 번째 전불가설품(轉不可說品)에서는 전하지 않는 말이 없음을 설하고 있다. 앞에서 설한 모든 품이 바로 전하지 않음이 없으니, 모두가 참된 법이요 원만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묘련사 결사 감로법회가 이루어져 결사문과 발원문, 성념명, 사규를 지어 결속을 하고자 했다. 이러한 결속이 『제중감로』로 편집되어 감로법회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결사문에는 묘련사 결사에 동참한 동참자의 수와 명칭, 그리고 자신들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발원문에서 결사 동참자들은 원통교주 관세음보살의 넓은 문에 응신으로 나타나 보이시며 두루 감로로 씻어 중생을 제도하여 주옵소서 하면서 머리 숙여 지심귀명례하고 있다.

발원문에서 회향은 염(念)과 일념(一念)의 칭념(稱念)을 하여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념명은 팔만사천의 제 경전은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나라에서 편찬된 경전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방식의 내용이다. 감로법회의 성념명은 법문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감로법회의 사규는 결사에 최초 동참한 50인이 자신들의 의지를 나타내고 집회의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규칙을 정한 것이다. 규칙은 10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은 불가의 5계를 기본으로 하여 탐진치 삼독과 조선시대의 근본윤리이자 유교의 가장 근본인 충효 윤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제중감로』에 나타난 불교사상

『제중감로』는 『법화경』의 관음사상이 그 기본을 이루고 있다. 감로법회는 정진 중에 관세음보살의 감응으로 감로법주가 설한 『제중감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제중감로』는 관음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불교의 제반 사상을 포섭하여 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엄사상은 『제중감로』의 줄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제중감로』의 품의 구성은 마치 부처가 『화엄경』을 설하고 편집되어 있는 것과 같은 연상을 일으킨다.

천태사상은 일행삼매•일상삼매•경행선통•방등삼매법 등의 사종삼매법을 천태대사는 주장하였다. 감로법회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염(念)과 칭(稱)의 수행은 ‘경행선통’과 같은 맥락의 수행을 행하고 있다. 「불가사의품 제9」에서 믿음의 회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천태종 산외파가 주장하는 천태사상을 그대로 옮겨서 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제중감로』에서는 『금강경』과 『반야심경』의 반야 공사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구류중생도 부처의 성품이 있고, 지혜와 덕은 서로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고 하여, 본래가 그대로라는 공사상을 설하고 있다. 법계는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고 설하면서 관세음보살의 자비는 항상 중생을 위한다고 설하고 있다.

「묘현수기품 제 6」은 선(禪)사상이 단적으로 나타난 품이라 할 수 있다. 결사의 법려 144명에게 선종에서 제자에게 전법게를 주어 인가하는 것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는 부분이다. 『제중감로』는 돈점현밀을 펼치면서 감로법주 정관은 간화선이나, 묵조선을 구분해 설하고 있지 않다. 성호 즉 명호를 일심으로 칭하여 관하는 염불선을 도입하여 재가불자들을 수행하게 하였다.

정토사상은 『제중감로』에 있어서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정토사상이라기보다는 내세적 미타정토를 희구하는 가운데 관세음보살을 매개체로 하여 안양국에 나아가고자 한다.

『제중감로』에는 생명존중과 평등사상이 전반적으로 골고루 펼쳐져 설해진다. 철저한 신분제로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 후기는 신분과 계급질서가 무너져 내리던 시기로 생명을 존중하고 평등사상이 투영돼 있다. 감로법주 정관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감로법회 동참자 전원에게 전법게를 주고 있다. 또 구류중생(九類衆生)과 준동함령(蠢動含靈)도 모두가 불성이 있다는 평등사상을 설하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발원한다. 즉 일체실유불성의 사상을 그대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을 설하고 있는 『제중감로』에서 감로법주 정관은 일심으로 관(觀)하면서 칭념하되 무상으로 염불하는 것에 바로 공덕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제중감로(濟衆甘露)』는 화엄경의 편집 구조와 화엄사상, 법화경의 관음과 선, 반야, 정토, 생명존중과 평등사상 등이 핵심을 이루며 대승사상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대승사상으로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중생을 구제, 제도하는 회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붓다의 가르침인 자비와 지혜로 중생을 제도하듯이 『제중감로』도 자비와 지혜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 『제중감로』가 설해지고 편집된 조선 말기는 사회적 변혁기로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시대였다. 그런 시대상에 맞추어 자비의 실천행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수행이 일부 출가자만의 독점이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감로법회의 소의경전이라고 볼 수 있는 『제중감로』는 불교의 모든 사상을 담고 있어서 대승불교사상의 종합전시장이며 백화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백화점이 고급부터 일반 상품까지 취급하듯이 대승불교의 모든 불교사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묘련사 결사인 감로법회는 순수하게 승가가 아닌 재가불자들이 주도하고 참여한 최초의 결사운동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감로법회의 사상이 대승불교와 재가불교의 지표가 되었으면 한다. 

 

▲ 성철스님.

성철(性徹)스님 약력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문학석사(선학전공).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박사(역사•철학 전공).
- 총무원 호법국장, 종무위원, 경기북부종무원 부원장 등 역임.
- 현재 태고학회 회장, 불교문예연구소 운영위원, 동두천 덕수사 주지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