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작다고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왕자, 뱀, 불, 사문이 그것이다. 왕자는 자라서 왕이 되면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쥐니 무시할 수 없고, 뱀은 비록 작아도 그 독이 무서워 그렇다. 자그마한 불씨가 숲뿐만 아니라 누리를 다 태워버릴 수 있으니 그렇다. 사문은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중생들을 다 제도하니 그렇다고 부처님은 아함경과 니까야에서 말씀하셨다.

작아도 그런데 하물며 작지 않은 존재가 스스로 위축되거나 혹은 무시당한다면 그것은 우스운 일이 된다. 우리 종도들은 지나치게 겸손하여 종세(宗勢)가 작다고 생각한다. 최근 장기간의 종단분규로 더욱 자괴감을 느끼고 자긍심이 많이 무너진것 같다.

그러나 살펴보자. 절이 3천개가 넘고 함께하는 수행자가 비구가 5천, 비구니가 1천, 전법사가 1천이나 된다. 자그마치 7천의 6부대중이 5백만 불자들을 지도하는 종단이 어찌 작다고 할 것인가.
지금 스스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자긍심이 모자란 종도들의 종단은 어떤 형세인가? 생각해보자.

우리 종단은, 전쟁이 일어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방송으로 호언장담하고 지금 북진중이라고 거짓말을 녹음해 틀어놓고는 한강다리를 끊어버린 이승만에 의해 법난이 일어나 선조사스님들의 법맥을 면면히 계승해오던 2천여 전통사찰 대부분을 빼앗겼다.

나아가 박정희에 의해 5:5:5의 15인 위원회가 구성돼 결의를 할 때마다 10:5라는 조작된 의사표현에 의해 통합종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아놓고, 불교재산관리법이라는 악법에 의해 단체등록을 하라며 대표자를 우리 스님으로 해서 등록하면 접수하지 않고 일방으로만 불교단체 즉 사찰을 등록하게 하여 등록한 절은 적법한 것으로 만들었다.

등록신청은 했으나 등록을 받아주지 않았으면서도 그러기에 적법한 사찰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판할 때마다 족쇄가 되어 피눈물 흘리며 빼앗긴 도량들이 아니던가.

그래도 한 조각 심장을 움켜쥐고 셋방에서나마 조석으로 헌향 정진한 공덕으로 마련한 새 도량, 저들이 내버려 놓은 터만 있었던 곳을 복원한 도량들의 모임이 우리 종단 아니던가. 게다가 이름마저 마음대로 쓸 수 없어 한국불교 모든 법려들의 종조인 태고보우국사의 법휘를 따라 새롭게 마련한 자랑스러운 이름 아닌가.
태고종도들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종단임을 다시금 밝히 살피고 알아서 자부심을 지니고 1천 7백년 한국불교사를 계계승승해야 한다.

나아가 남북이 분단되어 갈가리 찢겨진 민초들의 가슴을 부처님과 종조님의 지혜와 자비사상, 원융사상에 의해 보듬고 어루만져주며 갈 길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사명과 서원을 새기고 다져야 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법화경>의 큰 힘 가진 장사의 힘의 원천이 되는 구슬이 상투 속에 들어있는 것을 모르면 장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되새기고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갈라진 종도들의 가슴을 공직을 가진 지도자들이 겸손하고 따뜻한 혜안으로 살핀다면 한국불교의 적자종단, 장자종단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불교는 사상최대의 위기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가자가 매년 대폭 줄어들고 있고, 어린이 포교를 등한히 한 결과 타종교에 비해 청소년과 젊은 불자들이 크게 감소하였다. 교육과 사회복지에서도 그 역할이 미미하여 존재감마저 없는 등 모든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가장 우려할 점은 종단에 대한 불자들의 신뢰도가 나날이 저하되고 있는 점이다.

하루빨리 대결과 반목을 거두고 과거의 성찰과 미래의 비전이 동반된 새로운 출발을 결행할 수 있도록 화합 분위기를 만들자.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신뢰받는 종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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