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홍 (관악산 성주암 주지 • 서울남부교구종무원장)

▲ 재홍스님(관악산 성주암 주지).

부처님의 교설을 차제설법(次第說法)이라고 한다. 당신의 깨달은 진리가 너무 높고 깊어 그 경지를 직접 일러주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없어 진리가 아니라고 하거나 자신들이 행할 수 있는 법이 아니라 여겨 떠날 것을 염려하신 부처님께서는 기초를 다지고 조금씩 단계를 높여 그 위에 깨달은 법을 설하셨다는 것이다. 경전에서는 이것을 제석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설하지 않고 열반에 드시려 하자 방법을 제시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와 역사를 가진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에 들어와서는 이론적 발전이나 성립의 순서와는 관계없이 일시에 번역된 관계로 경전들에서 상호간 모순과 불일치를 느끼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여러 경전들을 어떤 순서와 가치체계를 가지고 설명되었는지를 연구하여 부처님 말씀을 전체적으로 모순됨이 없이 해석하려고 하는 모습이 생겨났다.

이들은 또한 어떤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지를 판별하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 모든 경전을 시간적인 순서나 내용에 따라 배열하고 각 경전들이 가지고 있는 가르침의 깊이와 우열을 연구자 자신의 독자적인 여러 기준에 따라 체계화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중국의 종파가 생겨났고 우리는 이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 한다. 이러한 교상판석들에 의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함경으로 시작해서 방등, 반야, 그리고 법화, 화엄의 순으로 깊이를 더해갔다고 본다. 그렇다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아함으로부터 반야에 이르기까지는 법화, 화엄을 설하기 위한 기초 쌓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승려 교육체계인 강원교육도 4년 기간 중 초발심, 치문을 거쳐 사집, 사교까지가 3년 과정이고 나머지 1년 동안 화엄을 공부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화엄을 공부하기 위해 3년을 공부한다는 말이 되고 그만큼 <화엄경>이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래의 강원 교육은 교재를 한문경전으로 하다 보니 한문을 익히고 뜻풀이하고 논강하다보면 경전 전체를 본다기 보다는 제목 해석하고 서문 공부하다 보면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교육체계는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깊이 있고 맛이 있는 공부는 될 지 모르지만 다변화된 사회에 불교를 포교하는 인재를 길러내기는 쉽지 않다.

현대를 정보의 홍수시대라고 한다. 굳이 책이 아니라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이기도 하고 전문가가 아니라도 근접한 정보를 수집하고 읽어볼 기회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단지 잘못된 정보도 많아 이로 인한 부작용도 크기 때문에 정보를 걸러내고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시된다는 점이다.

불교와 관련된 정보도 마찬가지여서 전문 용어에 취약해 이해력이 떨어지거나 수행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과 잘못된 정보 내지 악의적인 정보를 빼면 정말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그만큼 불교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 인터넷이다. 그러다보니 출가 수행자보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월등히 많은 사람도 많지만 교묘하게 비틀거나 잘못된 정보로 불교를 비방하고 추락시키고자 하는 정보를 잘못 접한 사람도 많아 불교에 실망하고 심지어 개종하는 사람들도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잘못된 정보를 수정해주고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줘야할 스님들의 책무는 크다 할 것이다.

요즈음 스님이란 호칭이 스승님의 준말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타종교에서는 자기 신도들에게 스님이란 호칭을 쓰지 못하게 해 대부분 다른 호칭을 쓰는 경우를 본다. 그러다보니 스님이란 소리를 타 종교인에게 듣는 것이 쉽지 않고 심지어 이로 인한 다툼이 일어나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어찌되었건 스님이란 명사가 스승님의 준말이라고 한다면 우리 스스로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스승의 요건은 도덕적이나 인격적인 측면은 물론 학식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경전과 논서를 탐독하고 익혀야하겠지만 여간한 노력과 결심이 없으면 어렵기 때문에 학교나 학당을 찾아 강의를 듣거나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다면 다 같이 협조하여 그 환경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종단의 소의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화엄경(華嚴經)>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제일 종단이라고 하는 조계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다. ‘전등법어’란 선종의 조사스님들이 깨치고 설법한 법어집을 말하는데, <육조단경>과 <임제록> 같은 조사어록을 말한다.

소의경전이란 종단의 근본경전을 말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종단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화엄경>이다. 한국 불교의 불교의식 전반에 흐르고 있는 사상은 금강과 화엄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나 화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뿐만 아니라 전각이나 복식, 단청이나 회화에 이르기까지 화엄을 이해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소위 말하는 대승문화권에서 화엄은 근본이고 생활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불교의 전통은 화엄이 소의경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종단의 소의경전이 <화엄경>이고, 한국불교의 의례 의식에 화엄의 사상이 흐르고, 화엄이 최상위의 경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화엄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한국불교 태고종이 정통종단이고 장자종단이라고 자칭하는 입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화엄을 공부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누군가 있어 한국불교의 사상에 대해, 또 화엄에 대해 물어오는데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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