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백 운(총무원 교육부원장 • 강원교구종무원장)

▲ 편백운 스님.

지난해에는 국가적으로나 종단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가적으로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천만의 촛불이 타오르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여 사회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진영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민생경제가 후퇴하는 등 국민의 삶이 더욱 어려워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 국민들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생업에 열중하여 국가 사회의 안정이 유지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우리 종단 역시 지난해에는 어렵고 힘든 한해였다. 오래전에 발생한 행정부와 입법부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종단의 정상운영이 어려워지고 수행에 전념하여 중생의 사표가 되어야 할 종단의 스님들이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일시나마 영어(囹圄)의 시련을 겪는 등 뜻있는 불자들을 실망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절대다수 종도들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킴으로써 종단이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자연에 대한 외경심(畏敬心)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어 인간 스스로가 만든 관념의 세계이자 그것을 믿는 신앙인의 절대적 자기 신념체계다. 세계의 종교 가운데 신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을 중심 삼는 종교는 불교가 유일하다.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지혜는 만유의 현상세계가 공간적으로 실체가 없고 시간적으로 영원하지 않으며 인간의 고통은 존재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행과정을 통하여 집착과 욕망을 끊어 열반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다.

자비는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각지(覺智)를 중생들에게 널리 펴서 무명 중생으로 하여금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전자를 소승비구불교라 하고 후자를 대승보살불교라 한다. 우리 태고종은 후자인 보살불교를 실천하는 대승교화종단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불교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개화기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신미양요 이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이 되면서 외래 종교가 유입되어 그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고 승잔사파(僧殘寺派)로 숨죽이던 한국불교가 새로운 변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때 눈푸른 젊은 납자(衲者)들이 산문을 박차고 도시로 나가 신학문을 공부하고 개중에는 외국에 유학하여 석 • 박사가 되어 돌아와 정치, 교육, 문화 등 각계에 진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본산주지들이 자금을 모아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기업체를 만드는 등 불교의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동국대학교를 비롯하여 초, 중, 고 등 현존하는 불교 종립학교는 모두 그때 세워진 것들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나 강원, 충북, 전남 여객 등 버스회사와 인천베아링(인하제철 전신), 대구 자유극장, 전주 동산정미소, 대한조림, 대한유지 등도 불교종단에서 설립한 기업체들이다.

이처럼 한국불교(정통종단 태고종)는 개화기부터 해방이후까지 시대에 부합하는 자조(自助)적인 혁신불교를 창출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그러나 1954년 위정자의 망집에 의해 발생한 불교 법난(法難)으로 불교의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온 기성 승려들을 왜색승으로 매도하고 부당한 정치권력과 결탁한 명리승(名利僧)들이 종권을 유린하는 바람에 정통종단 태고종은 변방으로 밀려나 반세기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급속한 첨단문명은 인간세계의 삶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기계가 인간생활의 보완재(補完財)였으나 지금은 대체재(代替財)가 되고 있다.

한국의 종교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기독교 인구가 불교 인구를 추월한지 이미 오래다. 일부에서 중 고생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장래 신부나 목사가 되겠다는 학생은 있어도 승려가 되겠다는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공리주의(功利主義)가 지배한다. 종교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젊은 청소년을 포용할 수 없는 종교 집단에게 미래는 없다. 불교의 이상은 성불(成佛)에 있으나 개인의 성불을 사회발전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회 환경의 변화 속에 불교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승단의 은둔적이고 폐쇄적인 생활 패턴과 일반 불자들의 소극적인 신앙 행태를 바꿔야 한다.

한국불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교단의 각성과 특단의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태고종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올해 우리 종단은 총무원장 선거가 있다. 벌써부터 선거 여론이 비등하고 자천타천의 후보들이 회자된다. 지금 우리 종단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여 미래를 대비해야 할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겠으나 종단도 어떠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 종격(宗格)과 종책(宗策)이 달라진다.

종단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적어도 승려의 위상에 맞는 인품을 가지고 해박한 불교지식과 경험, 확고한 종단 정체성,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사회와의 소통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감히 생각된다.

금년 한해는 종도가 합심하여 종단안정을 이루고 상식과 정의, 원칙과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보람 차고 격조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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