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저마다 무위를 배우네. 이곳은 부처 뽑는 자리이니 마음을 비우고 급제해서 돌아가노라.

석두희천에게 방 거사가 물었다.
“만 가지 진리와 짝이 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방 거사는 그 자리에서 여래선(如來禪)의 도리를 깨쳤다.

후에 방 거사는 마조도일에게 가서 다시 물었다. “만 가지 진리와 짝이 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조는 “거사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셔버린 후에 말해주겠노라”고 답했다.
이 말에 조사선(祖師禪)의 도리를 깨친 후 마조화상 앞에서 게송을 읊었다.

 <방거사 오도송(悟道頌)>

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
시방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
저마다 무위를 배우네.
此是選佛場(차시선불장)
이곳은 부처 뽑는 자리이니
心空及第歸(심공급제귀)
마음을 비우고 급제해서 돌아가노라.

석두희천(石頭希遷)은 중국스님으로 육조혜능에게 참학하다가 뒤에 청원행사(靑原行思 ?~740)에게 참학하여 법을 전해 받았으며 혜능의 손제자가 된다. 석두희천의 제자 약산유엄(藥山惟儼)이 운암담성(雲岩曇晟)에게 법을 전하고 운암담성의 제자가 동산양개(洞山良价)인데 동산양개가 조동종의 종지를 세웠으니 이가 바로 석두희천의 4대손이다.

또 석두희천의 제자 약산유엄과 천황도오(天皇道悟)가 있었고 천황도오의 제자 용담숭신(龍潭崇信), 용담숭신의 제자에 덕산선감(德山宣鑑)이 있고 덕산선감의 제자에 암두전기(岩頭全幾)가 있고 암두전기스님의 제자에 운문문언(雲門文偃)이 있어 운문종의 종지를 세웠다.
운문문언은 석두희천의 6대손 법제자이고 운문문언의 사제(舍弟) 현사사비(玄沙師備)가 있었고 현사사비의 제자 나한계심(羅漢桂深)이 있고 나한계심의 제자이자 석두희천의 8대손 법자인 법안문익(法眼文益)이 법안종(法眼宗)의 종지를 세웠다.

육조스님이 법을 전한 5분의 제자가 있었는데 남악회양(南嶽懷讓), 영가현각(永嘉玄覺), 청원행사(靑原行思), 하택신회(荷澤神會)이다. 이 중에 남악회양 문중과 청원행사 문중이 전법(傳法)이 융성하여 선가(禪家) 오종(五宗)을 이루어 그 종지와 종풍이 중국천하를 지배했다. 남악회양 문중에서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潙仰宗)이 나왔고 청원행사 문중에서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이 나왔다.

달마 선법(禪法)이 중국에 들어와 육조혜능 대사에 이르고 이어서 후계가 5가 7종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왔는데 5가중에 3가가 석두희천 문중이요, 남악회양의 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의 문중이 임제종과 위앙종의 2종으로 7종은 이 두 문중의 5가와 마조의 4대손 임제의 후손 양기(楊岐)와 황룡(黃龍)의 2종을 합해 7종이 되었다. 이를 5가 7종이라 한다.

우리나라 신라 때 구산선문(九山禪門)도 중국에서 일어난 석두희천과 마조도일의 양 문중에서 일어난 조사선(祖師禪) 가풍의 큰 영향력에 의하여 수많은 수행자들이 중국을 찾아가서 오랜 수행 끝에 전등심인(傳燈心印)을 받아와 이루어진 것이다.

구산(九山) 가운데 전북 남원의 실상산문과 전남 장흥의 가지산문, 전남 곡성의 동리산문의 3문이 서당지장의 문중이다. 강원도 강릉의 사굴산문은 염관제안의 문중이며 충남 보령의 성주산문은 마곡 보철의 문중이고 전남 화순과 낙안은 남전보원의 문중이다. 문경 봉암사 희양산문, 창원의 봉림산문, 황해도 해주의 수미산문은 이들 문중에 속하지는 않지만 구산선문은 모두 마조도일 문중의 가풍을 계승했다.

구산선문이 후계를 이어오다가 신라시대를 지나 고려에 들어와 법맥이 끊어졌다. 그러나 마조도일의 4대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의 18대 적손이었던 석옥청공 선사에게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스님이 직접 법을 받아오면서 고려 말에야 한국의 단일 선종이 부흥하게 되었다.

방거사의 오도(悟道)

<조당집> 제15권에는 마조도일의 법을 이은 방거사의 참선 수행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心如境亦如(심여경역여)
마음이 여여하면 경계도 여여하니
無實亦無虛(무실역무허)
진실도 없고 허무도 없네
有亦不管(유역불관) 無亦不居(무역불거)
있음도 관계 않고 없음도 구애하지 않으니
不是賢聖(부시현성) 了事凡夫(료사범부)
성현이 아니라 일을 마친 범부로다.

사대오온(四大五蘊)의 가화합(假和合)에 집착하는 중생에게는 사대오온 즉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가상(假像)이요 마음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망념(妄念)에 잡혀 몽환(夢幻)인줄 모르고 이를 사실이라 믿고 수행자가 도를 닦아 이르는 오도(悟道)의 경지(境地)를 오히려 사실을 떠난 추상적 이해로 오인(誤認)한다. 그러나 이(理)의 세계와 사(事)의 세계는 서로 떠날 수 없어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고 걸림이 없는 것이 도(道)라는 것을 모른다.

<화엄경>에 네 가지 진리의 세계가 있다.
첫째는 사법계(事法界)이다. 우주만유 개별상이 진리의 세계이다.
둘째는 이법계(理法界). 우주만유의 근본에는 일관된 본체가 있다는 진리이다.
셋째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이(理)와 사(事)는 낱낱이 독립된 것이 아니고 사상즉본체(事象卽本體)이다.
넷째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이다. 사법계와 이법계가 서로 융통무애할 뿐이다. 현상차별계 사이도 융통무애하다.
도(道)란 어디에도 차별없이 융통무애를 말한다.

방거사는 이 네 가지 무애법계는 물론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심지어 중에도 속에도 매이지 않는 훤칠한 사람으로 큰일을 마친 분이다. 중이 중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속인은 속인에 집착하면 도를 이루지 못한다. 방거사와 같은 마조도일의 제자 남전화상의 제자인 조주스님은 “금불은 용광로를 건너가지 못하고 목불은 불을 건너가지 못하고 토불은 물을 건너가지 못한다.”라 했다.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대사는 육조혜능의 손제자이고 방거사의 법사(法師)이다.
선종에서 스승과 제자가 성립되는 것을 입실사법(入室嗣法)이라 하고 이는 반드시 입실면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입실면수는 수행자가 자기의 수행으로 얻어진 결정을 스승을 만나 묻거나 스승이 물어 대답하여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대오(大悟)에 일치하였을 때 인가하고 제자가 되는 것이다.

방거사는 석두희천에게 법거래를 하였으나 완전한 계합(契合)을 이루지 못하고 마조도일에게 가서 성취하였다. 이를 가리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한다. 즉 방거사의 법이 완숙하기 전일수도 있고 석두의 법이 다를 수도 있다.

마조의 속가성은 마씨(馬氏)로 어려서 출가하고 육조혜능의 제자 남악회양(南嶽懷讓)에게 30년이나 선을 익혀 심인(心印)을 받았다. 남악회양은 육조혜능(638~713)의 제자 혜가신광(慧可神光)의 제자이니 육조혜능의 손제자이다.

마조도일은 남악회양의 제자로 30년이나 참학한 뒤 강서(江西)의 개원사(開元寺)에서 16년간 수많은 수행자들을 제접하여 거대한 선풍을 드날렸다. 제자만도 139분으로 종풍(宗風)을 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출 난 제자로는 백장회해(百丈懷海), 대매법상(大梅法常), 염관희안(鹽官希安), 남전보원(南泉寶願), 서당지장(西堂地藏), 반산보적(盤山寶積), 불광여만(佛光如滿), 마곡보철(麻谷寶徹), 그리고 방거사이다.

자기가 처해진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도를 닦는 것만이 해결해야할 문제이고 도에 들어서면 철저히 닦고 선지식(善知識)을 친견하여 점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방거사는 집착하지 않으려고 큰 재산을 동정호 상류에 가라앉히고 날마다 하루하루 대로 바구니와 조리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서 호구지책을 했다. 중국의 나찬 선사가 일컫는 기래끽반(飢來喫飯) 곤래면(困來眠)의 삶이었다.

자기 집의 한쪽에 암자를 만들어 온 가족이 수행에 전념한 후 중국천지의 선지식을 곳곳 찾아다니며 그간 닦은 공부를 점검하고 거량했다. 거량에 미치지 못하면 그 곳에 머물러 자각각타(自覺覺他)에 최선을 다했다.

有男不婚(유남불혼)
아들은 있으되 결혼하지 않고
有女不嫁(유여불가)
딸은 있으되 시집가지 않았다.
大家團圝頭(대가단란두)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共說無生話(공설무생화)
생멸 없는 진리를 같이 말했네.

강원(講院)에 사집반(四集班)이 있다. 강원의 사집과는 불교의 총체적인 정리와 조사스님들이 후학에게 어떻게 수행하고 깨달을 것인가 하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집 중에 <선요(禪要)>가 있는데 선의 중요성을 원나라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스님이 역설해둔 부분이다. 오도(悟道)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법문한 내용이 자세히 쓰여 있다.

그 <선요>의 첫머리에는 어떤 스님이 방거사의 오도송(悟道頌)을 묻고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이해시키고 있다.
고봉스님의 이름은 현묘(玄妙) 또는 원묘(原妙)요, 운암혜랑(雲巖惠朗)의 법을 이었다.

스님 - 방거사의 이르심이 사람을 위한 곳이 있습니까?
고봉 - 있느니라.
스님 - 어느 한 글귀에 있습니까?
고봉 - 판단한 깊이로 핵심을 물으라.
스님 - 어떤 것이 시방이 다 함께 모인 모임입니까?
고봉 - 용과 뱀이 섞여있고 범인과 성인이 사귀어 참여함이니라.
스님 - 어떤 것이 저마다 무위를 배움입니까?
고봉 - 입으로 부처와 조사를 삼키고 눈으로 하늘과 땅을 덮음이니라.
스님 - 어떤 것이 부처 뽑는 자리입니까?
고봉 - 동서가 십만리요 남북이 팔천리이니라.
스님 - 어떤 것이 마음을 비우고 급제하여 돌아감입니까?
고봉 - 용모를 움직여서 본분종자를 찾아 초연한 적요(寂寥)에 떨어지지 않음이니라.
네가 어느 곳을 보았는고?
스님 - 할(喝)!
고봉 - 이 방망이를 들어 달을 침이로다.
스님 - 이 일은 아직 두고 다만 저 서쪽 봉우리에 오늘 시방이 모여서 선불장을
여시니 필경에 무슨 상서가 있습니까?
고봉 -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정(情)과 무정(無情)이 모두 성불함이니라.
스님 - 모두 다 성불했다는데 무엇때문에 저는 성불하지 못했습니까?
고봉 - 만일 네가 성불했다면 어찌 이 세상을 성불하게 하겠느냐?
스님 - 허물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고봉 - 상주(湘州)의 남쪽이요 담주(潭州)의 북쪽이니라.
스님 - 제가 참회함을 허락하시겠습니까?
고봉 - 예배하여라.
스님 - 겨우 절하였다.
고봉 - 사자는 사람을 물고 한나라 개는 흙덩이를 좇아간다.

                         지허스님(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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