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종파별 대표적 설행 사찰을 바탕으로 의례의 구성 절차와 설단 장엄 비교 .... 생전예수재에서 나타나는 축제성 통해 한국의 불교의식이 가지는 축제적 성격 규명

  

경남 밀양소재 해광사 주지 승범(承範)스님이 2월 24일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2017학년도 학위식에서 불교문예학과 의례전공으로 불교문예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생전예수재의 현장론적 이해와 의례의 축제성'이다.

이 논문은, 종교적인 사상과 신앙심을 고취시킬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귀중한 민속문화로서 생전예수재의 성립과 역사적 전개, 기본구성과 특성 등을 상세히 서술했다. 생전예수재에 관해 심도 있는 연구로 지역별 종파별 대표적인 생전예수재의 설행 사찰을 바탕으로 의례의 구성 절차와 설단의 장엄을 비교했으며, 생전예수재에서 나타나는 축제성을 통하여 한국의 불교의식이 가지는 축제적 성격을 심도 깊게 규명했다.

때문에 오구굿을 연극으로 만든 '오구'와 영산재를 뮤지컬로 만든 '니르바나'와 같이 생전예수재 또한 현대사회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재인식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승범스님의 박사학위 논문'생전예수재의 현장론적 이해와 의례의 축제성'을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주>
 

 생전예수재의 성립과 역사적 전개

생전예수재는 사람이 죽은 뒤에 행할 불사(佛事)를 살아있는 당시에 미리 닦기 위해 올리는 재의식이다. 살아있을 당시에 자신이 전생에서 진 빚을 미리 갚고 미리 닦아 놓는 불사이다. 사후의 명복을 미리 기원하여 생전에 선근공덕을 닦아 사후 왕생할 보리(菩提)의 자량(資糧)을 마련하자는 재의식이라 할 수 있다.

생전예수재의 교리적 근거는 여러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을 신앙적 바탕으로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佛說灌頂隨願往生十方淨土經)』 『불설수생경(佛說壽生經)』,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 그리고 『예수천왕통의(預修薦王通儀)』 등에 잘 나타난다. 여러 경전의 '자수(自修)' '역수(逆修)'  '예수(豫修)'라는 표현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불설수생경』에서는 열두 가지 띠를 따라 사람으로 태어날 때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생명줄을 이어준 돈 '수생전(壽生錢)'을 명부에서 빌렸으므로 갚아야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생 빚은 갚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전생의 빚인 수생전을 바치지 않으면 살아서 18가지 고난이 있으며 죽은 뒤에는 천도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천왕통의』에는 북인도 유사국 병사왕이 25년 동안 49번에 걸쳐 예수시왕생칠재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열시왕의 종관들과 그에 따른 권속들의 명목(名目)을 몰라 명사들의 숨은 고통을 위로 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저승을 다녀온 후 다시 예수시왕생칠재의 35편을 올바르게 봉행함으로써 이후 미륵대성을 친견하고 수다원과를 증득하여 성자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예수재의 유래를 판단할 수 있다.

한국불교에서 생전예수재의 형태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기록은 조선 중종 13년(1518) 강원도 원주 사람인 진사 김위(金渭)의 상소문에 등장하는 '소번재(燒幡齋)'이다. 그 내용을 보면, 근일 이래로 두 세 승니(僧尼)가 머리를 땋아 늘이고 속인의 복장으로 몰래 내지(內旨)라 일컬으며 산중에 있는 절에 출입하며, 쌀과 재물을 많이 가져다가 재승(齋僧)을 공양하고, 당개(幢蓋)를 만들어 산골에 이리저리 늘어놓고, 또 시왕(十王)의 화상을 설치하여 각각 전번을 두며, 한 곳에 종이 1백 여 속(束)을 쌓아두었다가 법회(法會)를 설시(設施)하는 저녁에 다 태워 버리고는 '소번재(燒幡齋)'라 하였으며, 시왕상을 설치하고 번을 두며 한곳에 종이 1백 여 속(束)을 쌓았다가 저녁에 태워버렸다는 내용으로 보아 이는 생전예수재의 형태로 판단된다.

   
▲ 시련
그리고 생전예수재의 의례집에 관한 문헌을 보면,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송당대우(松堂大愚)가 집술(集述)한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豫修十王生七齋儀纂要)』가 있으며, 1566년 최초의 판본으로부터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15종의 판본이 간행되었다.
한국불교에서 '생전예수재'라는 이름으로 설행한 기록을 보면, 1573년 문인 태균(太均)이 간행한 나암보우(懶庵普雨, 1509~1565)의 『나암잡저(懶庵雜著)』에 「예수시왕재소」, 1648년 간행된 기암법견(奇巖法堅, 1522~1634)의 『기암집(奇巖集)』에 두 개의 「생전예수재소)」, 1647년 비구 설청(說淸) 등이 스승의 글을 모아 판각한 『편양당집(鞭羊堂集卷)』의 「생전소」와 「시왕소」 벽암(碧巖) 각성(覺性)의 문인 지선(智禪)이 1661년 편찬한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의 조전점안에 관한 내용인 「예수문조전원상법(預修文造錢願狀法)」, 1710년 간행된 설암추봉의 『설암잡저』에 「서윤섬예수상중소」, 1717년 간행된 월저도안(月渚道安, 1638~1715)의 『월저당대사집(月渚堂大師集)』에 실린 「생전시왕재소」 및 「생전발원재소」, 1821년 간행된 함월해원(涵月海源)의 『천경집(天鏡集)』에 「예수재소」, 1786년에 문인 보철(普喆)이 저자인 진허의 입적 후 유고를 개간한 『진허집(振虛集)』의 「희원동지예수대례주별소(희圓同知預修大禮晝別疏)」,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시집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의 「축시왕소」, 응운공여(應雲空如)의 『응운공여대사유망록(應雲空如大師遺忘錄)』의 『예수함합별문(預修緘合別文)』, 용운처익(龍雲處益, 1813~1888)의 『다송문고(茶松文稿)』에 시왕생칠재의 내용, 1870년에 간행된 치조환공(治兆幻空)의 『청주집(淸珠集)』의 「예수(預修)」, 금명보정(錦溟寶鼎, 1861~1930)의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의 「조계종용월선사전(曹溪宗龍月禪師傳)」 등에 생전예수재와 시왕생칠재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위의 기록으로 보아 16세기에는 '예수시왕재(預修十王齋)'의 명칭이 17세기 들어서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로 '생전(生前)'이란 명칭이 첨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생전시왕재(生前十王齋)', '예수대례(預修大禮)'  '시왕생칠재(十王生七齋)'  '예수재(豫修齋)'등의 여러 명칭으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현행 생전예수재는 조선시대 16세기 초에 소번재(燒幡齋)라는 명칭으로 시작되어 오늘날 생전예수재로 이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생전예수재의 기본 구성과 특성

예수재는 사찰에 따라 하루나 삼칠일간의 의식으로 치르기도 하고 7일마다 일곱 번에 걸쳐 칠칠재로 지내기도 한다. 삼칠재 형식이지만 회향일을 이틀에 걸쳐 치르기도 한다.

의례를 치르기 위한 설단은 상, 중, 하단의 삼단으로 설치하며, 설단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상3단'  '중3단', '하3단'의 3단으로 이루어진다. 상단은 비로자나불 · 노사나불 · 석가모니불의 삼신불단이며, 상중단은 지장보살 · 무독귀왕 · 도명존자이고, 상하단은 대범천왕 · 제석천왕  · 4천왕으로 증명단이다. 중단은 먼저 중상단에 명부시왕을 봉안하고, 중중단에는 하판관, 지등관, 중하단에는 시왕의 안내 권속들을 봉안한다. '하단'은 별치단으로 조관단, 사자단, 마구단 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단의 규식은 현행 생전예수재에도 통용되고 있다.

현행 생전예수재의 구성은 예수재 준비의식과 본 의식으로 나누어지며, 준비의식은 시련(侍輦), 대령(對靈), 관욕(灌浴), 영산작법(靈山作法), 괘불이운(掛佛移運), 조전점안(造錢點眼) 등으로 지역과 사찰 장소에 따라 다르게 진행한다.

본 의례의 구성은 대부분 안진호의 『석문의범(釋門儀範)』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석문의범』의 내용에 나타나는 본 의례의 구성은 통서인유편(通敍因由篇)/보신회향편(普伸回向篇) 등의 3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문의범』의 절차는 35편이며,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절차는 31편으로 상단의 보례삼보편 제13, 중단의 제성헐욕편 제17, 기성가지편 제21, 공성회향편 제23등의 4가지 절차가 『석문의범』에 추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의례의 진행 구성은 크게 운수단 → 상단 → 중단 → 고사판관 → 봉송의 5단계로 되어있다.
절차에 대한 내용을 보면 통서인유편은 생전예수재를 봉행하게 된 연유를 올리는 의식이다. 엄정팔방편은 관세음보살님을 청하여 도량을 청정하게 정화시키는 의식이다. 주향통서편은 법사님을 청하고 모셔와 법문을 듣는 의식이다. 주향공양편은 일체의 불보살님과 성중들을 위하여 향을 올리는 의식이다. 소청사자편 · 안위공양편은 명부의 사자를 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봉송사자편은 사자들에게 예수재를 봉행하는 문서를 명부의 성중들에게 보내는 의식이다.

소청성위편  ·봉영부욕편 · 찬탄관욕편 · 인성귀의편 · 헌좌안위편은 상상단의 비로자나불 · 노사나불 · 석가모니불, 상중단의 지장보살 · 무독귀왕 · 도명존자, 상하단의 대범천왕 · 제석천왕 · 사천왕 등 증명의 존재들을 청하여 찬탄하고 찬욕을 행한 뒤 자리에 모시는 의식이다.

소청명부편·청부향욕편·가지조욕편·제성헐욕편·출욕참성편·참례성중편·헌좌안위편은 명부시왕을 비롯한 성중들을 청하여 찬탄하고 성욕을 행하고 상단에 배례한 후 자리에 모시는 의식이다. 기성가지편·보신배헌편·공성회향편은 상단과 중단의 모든 불보살과 성중들에게 간단히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소청고사판관편·보례삼보편·수위안좌편은 일체의 고사판관들을 청하여 상단과 중단을 배례하여 자리로 모시는 의식이다.

제위진백편 · 가지변공편(상단) · 가지변공편(중단) · 가지변공편(하단) · 공성회향편은 상단, 중단, 하단에 공양을 올리고, 함합소를 독송하여 금은전을 헌납하였다는 사실을 아뢴 후, 신도들에게 증서를 반으로 잘라 나누어주는 의식이다.
경신봉송편 · 화재수용편 · 봉송명부편 · 보신회향편은 생전예수재가 끝났음을 고하고 모든 불보살과 모든 상하의 성중들을 돌려 보내고, 위목과 금은전 등의 예수재 물품을 태우는 의식이다.

▲ 밀양의 광제사에서 열린 생전예수재에서 동참자들이 반야용선을 타고 탑을 돌고 있다.

생전예수재의 축제적 성격

한국불교에서 축제적 성격의 의식은 삼국시대 신라의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정치이념과 결합하면서 연등회와 팔관회가 더욱 성행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지속되었는데, 세종 14년(1425) 효령대군 이보(李補)가 주관하여 수륙재를 7일 동안 성대하게 한강에서 개설했는데 임금이 향을 내려 주고, 삼단(三壇)을 쌓아 1천여 스님에게 음식 대접을 했으며 모두에게 보시를 주고, 길가는 행인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내용에서 축제적인 모습이 잘 나타난다.

불교의식이 지니는 이러한 축제적 요소를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축제가 지니는 오락성, 유희적 요소, 나아가 참여자를 하나로 엮는 공동체 의식 등이 생전예수재에 어떻게 투영되는가를 볼 수 있다.

첫째로 탑돌이에 내재된 축제성으로 한국의 불교의례나 불교적 축제행사에서 탑돌이는 빠지지 않는 절차이다.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탑 둘레를 도는 탑돌이는 불교의 오랜 신행 전통 중 하나이다. 스님이 목탁을 치거나,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신도들이 등(燈)을 들고 그 뒤를 따라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이후 불교가 대중화되고 세대 간의 전승을 거치면서 민속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생전예수재에서 도량을 돌거나 탑돌이 형태의 의례는 시련과 명부의 시왕소청 그리고 금은전 이운의 탑돌이 등에서 설행하고 있다.

시련은 재의식을 위해 모든 불보살과 성현들, 도량을 옹호하는 신중들, 그리고 신도들의 선망조상, 무주고혼들을 청하여 도량의 설단으로 행렬하는 의식이며, 대성인로왕보살번을 선두로 사명기와 스님들이 합장한 채 따르고, 호적수와 취타대가 연주하며 합류한다. 이어 스님과 신도들이 78연(輦)을 들고 뒤따른다. 그 뒤를 영가의 위패들이 좇아가고, 이어 신도들은 각종 번과 기를 들거나 금은전의 지전을 머리에 이고 줄지어 따라가는 행렬을 이룬다.
명부의 시왕소청에서는 소청성위의 중단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신도들을 모두 모이게 하여 자신을 관장하는 시왕의 번 앞에 줄을 서게 한다. 각 줄의 제일 앞 사람부터 각각 초롱등, 창, 칼, 시왕번, 청사번을 들게 한다. 그러나 원칙은 그렇지만 시간 관계상 일일이 신도들에게 자신에 해당하는 시왕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줄 수 없기 때문에 임의로 시왕 번 앞에 10줄을 세운다. 이때 신도들에게 왜 줄을 서고 행렬을 하는지 설명한다.

이윽고 소청명부편의 중단에서 시왕과 판관귀왕 등의 청사가 시작되면, 시왕의 호명에 따라 나발, 태평소, 법라, 태징, 목탁을 든 인례승을 따라서 동참자들은 초롱등, 창, 칼, 시왕번, 청사번을 들고 지장보살의 명호를 연호하면서 탑 또는 법당을 돈다. 이때 초롱등은 행렬의 앞에서 불을 밝혀 안내하고, 창과 칼은 불법을 호위하는 팔부신장으로 행렬을 호위한다는 의미이다.

시왕번은 내가 명부에서 만날 시왕이며, 청사번은 시왕을 청하는 글이다. 이는 재가신도 스스로의 참여와 의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의식이 원만히 회향되도록 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탑돌이를 하거나 법당을 도는 것은 불법의 위신력에 의지하고자 하는 염원의 행위이다.

금은전 탑돌이란 신도들 각각의 전생 빚을 갚을 금은전의 이운과 이를 증명하는 함합소의 반을 봉투나 상자에 넣어 머리에 이고 도는 행위이다. 대성인로왕보살번을 선두로 호적수와 취타대에 이어 의식승과 승려들이 서고, 그 뒤를 영가의 위패와 금은전을 머리에 이고 따라간다.

이 의식은 탑돌이와 도량을 돌아 소대로 향하는 봉송행렬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전예수재에서 빠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절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도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며, 생전예수재의 목적이 담긴 가장 중요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종파와 지역에 관계없이 금은전과 함합소를 머리에 이고 소대로 향하는 행렬은 그 자체로 장엄하며, 축제적인 모습을 느끼게 한다.

불교의 기본 사상은 수행을 통해 '업(業)'이라는 행위로 인한 결과인 '보(報)'에 따른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벗어나는 것이다. 업이란 과거의 행위에서 비롯되는데 그 결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무수한 죄업을 짓는다. 그것을 알든 모르든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報)'에 따라 윤회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업사상과 명부시왕사상의 결합으로 전생 빚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 빚을 갚음으로써 전생의 죄업을 조금이라도 씻고자 하는 중생들의 열망은 사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앙적 기원이기도 한다.

이러한 신앙적 열망이 생전예수재의 '함합소' 로 나타났다. 함합소는 사람은 누구나 전생 빚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생전예수재 설행에서 갚아야하는 빚의 양을 기록한 문서이다. 전생 빚에 대한 내용은 『불설수생경』에 자세히 전하고 있으며, 「육십갑자십이생상속」에서는 자신의 생년의 육십갑자에 따른 각각의 흠전(欠錢)과 간경(看經)해야 할 경전[금강경, 수생경]의 권수를 기록하고 있다.

▲ 밀양 광제사에서 봉행된 생전예수재에서 신도들이 함합소 이운 탑돌이를 하고 있다.
둘째로 가마나 용선을 타는 행위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의 생전예수재에서는 가마를 타거나 용선을 타는 행위를 의식에 포함시킨다. 특히 작약산 예수재의 진행 과정에서 재가자들은 가마나 용선을 타고 탑을 돌거나 법당을 도는 행위를 하나의 중요한 의식으로 간주한다.
반야용선은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피안의 극락정토에 갈 때 탄다는 배이다. 반야란 모든 미혹(迷惑)을 끊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이나, 모든 법을 통달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뜻한다.

셋째로 음악적 놀이인 화청(和淸)으로 '화청'의 용어적 의미는 여러 불보살을 청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의 문(文)에 율(律)이 붙어 가창되면서 원래의 의미를 벗어나 음악적 용어로 해석되고 있으며, 화청은 대중들이 듣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율과 장단에 민속음악적 어법을 수용하고 있다. 즉 화청과 회심곡은 사설 형식의 가사로 이루어져 일반 대중이 쉽게 그 뜻을 전달 받을 수 있다.

즉 대중들은 범패가 지닌 종교성과 음악성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화청은 이상과 같은 성격을 지녀 대중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결과적으로 화청의 생성 요인은 대중을 상대로 한 불교의 포교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작약산 생전예수재의 경우 공양시간 후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화청을 진행한다. 24시간 동안 재를 진행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과정에 화청을 함으로써 긴장을 풀고 여유를 제공하려는 배려이다.

고려시대 불교의 국가적 번성은 다양한 불교의식을 성행시켰다. 수륙재와 영산재, 그리고 생전예수재와 같은 죽음의례는 불교의 대중화, 민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의식의 발전에는 그에 따른 신앙의 발전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생전예수재가 지니는 대표적 신앙은 지장명부신앙과 관음신앙, 그리고 미타정토사상이다.

영산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찬탄하고, 수륙재는 일체의 물과 육지의 무주고혼을 구원하기 위한 의식이다. 생전예수재는 이와 달리 산 사람이 주체가 되는 생전 의식이다. 영산재는 석가모니불의 법화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수륙재는 아미타불의 구원을 기본으로 하는 정토사상이다. 그러나 생전예수재는 위의 두 사상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 지장명부시왕사상이 더해진다. 그러므로 생전예수재의 사상적 깊이와 신앙적 다양성은 영산재나 수륙재 보다 많고 풍성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의식의 진행에 있어서도 영산재와 수륙재 의식에 더해 산사람을 위한 의식이 포함되기 때문에 신도들의 적극적 참여가 뒤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승려들이 의식을 주도하지만, 신도들이 열성과 참여 없이는 불가할 정도로 승속이 하나로 결합하는 종합의례라는 특징을 가진다.

생전예수재는 죽음을 준비하는 한국의 전통문화 중 하나이다. 윤달에 ‘수의’를 장만하는 일과, 무속에서의 ‘산오구굿’, 그리고 지역 축제인 ‘답성놀이’ 등은 공통적으로 죽음준비 문화이다. 죽음을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인의 사후관이다. 일상으로서의 죽음이기 때문에 슬프고 비극적으로 절망하기 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생전예수재는 ‘업(業)’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행위에는 반드시 ‘업보(業報)’ 라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업은 과거의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중생은 선업(善業)이든 죄업(罪業)이든 만들 수밖에 없다. 특히 죄업은 갚아야 할 행위이다. 현생의 죄업은 대상이 있어 갚을 수 있지만, 전생의 죄업은 대상이 없어 갚을 방법이 없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논리로 현생의 선업을 유도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생 빚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부처님과 명부시왕의 위신력에 의지하도록 한다. 생전예수재를 통해 이 빚을 갚음으로써, 사후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축제의 의식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의 전생 빚을 갚을 금은전을 머리에 이고 그 증서인 ‘함합소’를 소지한 채, 도량과 탑을 즐거운 마음으로 행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마와 반야용선을 타고 사후의 극락세계에 이를 것을 약속받는 행위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운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자연스런 과정일 뿐이라는 믿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전예수재는 화청과 춤을 곁들여 도량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는 점이 중요하다. 불법을 수호하는 법당에서의 춤과 노래는 부처님에 대한 불경(不敬)이라는 선입관을 가진 대중들에게 축제의 장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인식변화를 가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와 같이 생전예수재는 종교적인 사상과 신앙심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귀중한 민속문화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전예수재와 맥락을 같이하는 오구굿을 연극으로 무대화한 사례 <오구>가 있었고, 불교의례 영산재를 무대화한 <니르바나>는 우리 전통문화의 현대적 콘텐츠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한 의미와 가치, 그리고 생사관 등을 다양하게 내재한 생전예수재는 단순히 과거의 종교의례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새로운 문화로서 재인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 승범스님.
승범스님 약력

2010년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 졸업
2013년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 불교예술학 석사
2017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 박사

현 경남 밀양 해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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