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은 생로병사를 치료하는 약, 매일 먹어야 병이 힘을 못 써 … 건강을 찾아 본래 자리인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불교이며 참선”

 <전호에서 계속>

이들은 다음 10가지 예에 속한다 하겠다. 자기를 돌아보고 이 예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1. 속세에 업장으로 인하여 자성(自性)에 구름이 많이 끼어 청명(淸明)한 기운이 모자란 사람이다. 그런다고 참선을 포기하지 말고 계정혜를 더 철저하게 닦아 산중(山中)에 들어 예불, 기도, 염불, 간경을 병행하며 간단없이 신심을 독려해야 한다.

2. 밝은 스승,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달마대사는 스승을 40년간 시봉했고 중국에 와서 9년을 면벽한 후 혜가(慧可)를 만나 마음법을 전했다. 제불조사가 모두 밝은 스승을 만나 서로의 법기(法器)를 나눠 알아 법을 거량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했다. 그래서 옛부터 선지식을 만나는 자체가 반 공부를 마쳤다고 한다. 선지식을 만나 선지식이 인정치 않더라도 정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육조혜능 대사가 5조 홍인선사를 만나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으며 기다리듯 말이다

3. 일폭십한(一曝十寒)이라. 하루 따뜻하고 10일 춥다 한다.
하루는 공부가 잘 되고 열흘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열흘은 망상의 어지러움과 또 혼침과 싸워야 한다. 하루라는 탑을 위하여 열흘을 탑 쌓는 노력을 해야 하느니 경거망동하게 포기하면 이루지 못한다.

4. 근기가 열악하고 뜻이 미약하다. 중생은 누구나 안을 들여다보는 일에 어둡고 밖으로 중심을 두기에 뜻이 약하다. 작은 잡초 하나가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기고 차나무는 추울수록 푸르게 빛나는 것이 나를 이끄는 진리이다.

5. 진로(塵勞)의 골몰(汨沒)은 실패한다. 공부를 하다가 세속의 적인 희로애락과 호의호식(好衣好食), 부유와 권력과 명예에 팔려 승려가 되고도 자기 길을 못가고 남이 보기 좋아하는 세상 연극에 팔려 헛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6. 공(空)에 빠지고 고요에 집착한다. 공(空)은 그냥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공이지만 이는 지식이나 이해가 아닌 살아있는 공(空)이다. 고요도 적막한 고요가 아니라 고요 속의 고요이다. 공과 고요는 견성으로부터 이루어져야 침체하지 않는다.

7. 잡독(雜毒)이 마음에 맺혀 있는지 봐야 한다. 전생(前生) 또는 현생(現生)에 쌓인 업장(業障)이 수행을 저조하게 하고 공부를 하는데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가를 점검해봐야 한다. 우리가 <초발심자경문>을 배울 때 재색(財色)의 재앙은 독사에게 물린 것과 같다고 했다. 독에 물렸으면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 치료가 육바라밀(六波羅密)이며 용맹정진으로 이 독을 제거해야 한다.

8. 시절(時節)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가. 자신의 공부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고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계합(契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봄이라야 꽃이 피고 가을이라야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9. 화두(話頭)는 말이 아닌데 말인 줄 오해를 하고 있지 않은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화두를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 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혼침과 도거로 일시에 무너진다. 화두는 화두자체로 참구해야 처음 먹은 뜻이 이루어진다.

10. 견성을 얻었다고 혼자 인정하고 법인(法印)을 받아 증(證)하지 않고 증했다고 믿으면 자신에 빠져 중도 좌절한다.

이상의 열 가지 중 한 가지라도 걸려있으면 화두에 전념했다고 하나 덫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선 수행(禪修行)의 기초

불교를 믿거나 승려가 된 뒤 제일 쉽고 편안하고 부담 없는 것이 선(禪)이다. 염불은 소리를 내야하고 의식을 하려면 갖출 것이 많고 소리와 행동을 해야 한다. 교(敎)는 글을 익혀야 하고 책을 가져야 되고 두루 누구에겐가 글을 가르쳐야 하니 힘이 든다.

그러나 선(禪)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 모든 동물이 지닌 맨몸뚱이 하나면 되고 보통사람이 기본적으로 생활하는 최소한의 먹고, 입고, 자는 것 외에 중생이 다 같이 지닌 마음만 있으면 된다. 이 세상에 마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 몸뚱이가 지닌 마음을 찾는 일이니 이같이 쉽고 편한 일이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자기와의 숨바꼭질에서 자기를 찾는 일이다.

완전 자기를 찾아내는데 성공을 했거나 성공을 하러 가다가 이 목숨을 마칠지라도 스스로에게 가장 보람찬 일이다. 성공하면 제불조사가 되는 것이고 제불조사가 되기 위해 가다가 이 몸을 마칠지라도 다음 생에 이 몸 지닐 때의 수준에서 다음 생에는 닦아 놓은 지점에서 출발하는 보장이 있으니 더 말할 것이 없다. 하룻저녁 꿈같은 세상에서 부귀와 명예와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꿈의 순간이 깨면 빈손이다.

중동지방의 어느 부자가 죽었다. 유언하기를 자기를 사막 가운데 묻되 빈 두 손을 허공을 향해 모래 밖으로 내밀게 하라고 했단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것이다.
세상의 헛꿈을 위하여 갖가지로 무진 노력하는 그 기운으로 참선을 하면 부처와 조사를 이루고도 남는다.

사람들이 그런데도 한눈을 판다. 한 세상을 마치는 것은 이 세상이 삼계(三界)중 하나인 욕계(欲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욕계는 물욕의 세계이기에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의하여 세상의 헛된 형상이 유혹을 한다.

바다를 마음대로 다니며 먹이를 찾아 사는 것은 물고기의 자유이고 평화인데 불현듯 맛있는 먹잇감이 있어 이에 욕심이 나 행운이라고 삼켰는데 낚시에 걸려 죽는 것이다. 낚시에 걸려 몸부림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낚시는 욕계의 어디든지 있다. 세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찰에도 있다. 돈, 명예, 권력, 재욕, 음욕, 음식욕, 수면욕 등의 욕심이 낚시가 되어 본래 갖춘 불성(佛性)을 망친다.

▲ 참선은 생로병사를 치료하는 약이다. 매일 먹어야 병이 힘을 못 쓴다. 사진은 참선에 몰두하고 있는 서울 열린선원 불자들. 사진출처=열린선원 홈페이지
서양의 소크라테스도 “가장 큰 욕심이 가장 큰 재앙을 일어나게 한다.”고 했다.
세속에서도 큰 인물은 욕심이 없다. 욕심도 마음은 마음이다. 그러나 먼지 낀 거울과 같은 마음이다. 닦고 닦으면 먼지가 벗겨지고 맑은 거울이 되면 온갖 경치가 거울에 비친다. 그러다가 필경에 도를 통하면 거울도 없다. 육조혜능 조사가 말씀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경지에 이른다.

이 경지가 바로 경허스님이 말씀한 “삼천세계가 내 집이다”라는 경지이다. 얼마나 풍부하고 자유스러우며 행복한가. 이보다 부자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어떻게 살아도 한 평생이니 온갖 욕구에 시달리며 사는 것보다 참선으로 얻어진 불멸(不滅)의 경지를 얻는 결과는 얼마나 보람찬 인생인가.

이 길을 두고 어디를 갈 것인가. 이 최고의 길을 가보지 않고 사람들은 참선이 어렵다고 한다. 자기에게 분명히 있는 마음을 찾는데 자기에게 있는 자기를 찾는데 뭐가 어렵다는 말인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이 얼마든지 있고 조사스님들이 구구절절하게 가르쳐 주신 말씀이 많다. 그대로만 하면 여지없이 이루어진다.

자기에게 금덩어리가 있는데 이를 모르고 자기 밖에 있는 쓰다버린 고물을 찾으러 애를 쓰다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장님을 따라가지 말고 눈 뜬 사람을 따라가야 영광이 있다. 이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쉬운 길이다. 꼭 스님일 필요도 없고 꼭 재가인일 필요도 없다.

방 거사 말대로 자기가 사는 위치에서 하면 된다. 남녀노소도 없고 절이나 속가를 따질 필요도 없다. 참선하여 도를 통하기에 방 거사 가족이 우리에게 보여줬다.

방 거사가 가족에게 “참선이 어렵다” 했더니 방 거사 부인이 참선을 닦아 경험하고는 “쉽고 쉽다!”라고 했고, 딸 영조는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라고 했다지 않던가.

참선을 하자면 그 첫째는 뜻을 결단코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뜻은 있으나 하다가 그만둔다거나 하다 말다 하면 효력이 없다.

병이 생기면 약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 중생이 본래 부처인데 병이 생겨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당하는 중생이 되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찾아 본래 자리인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불교요 참선이다.

병이 든 사람이 병든 줄 알면 자신의 병을 치료해야겠다는 기본의지가 있어야 된다. 치료의지는 있으나 실제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병은 더 심해진다. 더한 병은 지옥, 아귀, 축생이란 삼악도에 떨어져 무진 고충을 당한다. 치료를 하다 말다 하면 병은 깊어가고, 또 치료를 한다고 해서 병이 나을까 하고 치료를 불신하면 구제의 길이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던가.  “내가 좋은 의사인데 아무리 좋은 약을 줘도 스스로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약을 먹고 안 먹고는 그 사람 자신의 판단이니 나는 어찌 할 수 없다.”

항하사 모래같이 많은 중생이 부처님이 주신 약을 먹고 생로병사의 병을 치료 받고 제불조사가 되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된 것을 똑똑히 보여 주지 않았던가.

참선은 생로병사를 치료하는 약이다. 매일 먹어야 병이 힘을 못 쓴다. 병은 균으로부터 번식한다. 균은 먼저 말한 5욕락이다. 즉, 식욕, 수면욕, 음욕, 명예욕, 재물욕 이다. 그러나 이를 아주 외면하면 이 몸을 지탱하기 어려우니 현실 속에서 줄여가면서 검소하게 최소한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이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니 마음을 찾으려 할 때 이 몸도 지극히 소중하다.
약 중에도 명약이 있다. 병을 치료하는 명약은 병의 악화를 막다가 최후에는 그 병균을 오히려 마음 찾는 아군(我軍)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인도말로 출가하여 결단코 부처가 되겠다는 사람을 ‘비구’라 했다. 비구란 한자로 걸사(乞士)이다. 걸사는 ‘발우를 들고 빌어먹는 선비’라는 뜻이다. 선비는 정신적인 추구를 위해 학문을 닦는 고상한 사람을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추호도 물러남이 없이 불법을 닦는 수행자가 비구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5욕락을 버리지 못하는 형식적인 가짜 비구라면, 세속에 살면서도 5욕락에 애착이 없고 철저하게 중생의 병을 해탈하고자 명약을 복용하는 진실한 재가자만 못하다.

                                    

    지허스님 (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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