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견성오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심(信心), 나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하는 것이 분심(奮心)"

세속에서 세속의 일을 근면성실하게 하고 살아가면서 일체의 번뇌와 망상을 내려놓고 마음은 자나깨나 화두를 일관하는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과거에도 무수했고 현재에도 많이 있다.

스님들의 학교인 강원의 중등교과서에 대혜종고(大慧宗杲, 1088~1163) 선사가 세인들과 교환한 편지를 편집해둔 <서장(書狀)>이라는 책이 있다. 편지를 쓴 이들은 모두 세속에서 벼슬을 하는 관리, 학자 등의 일반인들로 선을 참구하다가 대혜종고 선사에게 편지로 묻고 답한 것을 글로 모은 것이다. 그 중 진국태부인(秦國太夫人)이라는 여신도에게 답한 글의 요지를 소개해본다.

어느 날 대혜종고 선사의 상좌 도겸(道謙)스님이 국태부인의 집에 갔다가 부인이 직접 쓴 게송(偈頌), 즉 교(敎)의 이치를 시 형식으로 쓴 글 두 편을 받아와 선사에게 전했다. 선사는 처음에 의문을 가졌으나 상좌와 부인이 나눈 대화 내용과 부인의 근면정진하는 습관을 자세히 물어본 뒤 마음을 속이는 글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쓰고 이에 칭찬하며 다음과 같이 화답하였다.

광겁에 밝히지 못한 일이 홀연히 나타나게 되었으니 법희선열의 즐거움은
세속의 즐거움과 비교되지 않음을 아느니 산과 들이 부인을 위하여 즐거워 하노라.
아들이 재상에 오르고 부인이 또한 국태부인이라는 칭호를 황제로부터 받았으나
그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그 귀함이 백겁천생을 받아쓴다 하더라도 귀함이 아님을 알아
참된 귀함을 알게 되었느니라. 그러나 참 귀함을 알아 집착한다 하더라도
존귀에 떨어져 중생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니라. 지난 일을 잊지 말기 바란다.

부인의 성은 허씨(許氏)요, 본명은 법진(法眞)이니 태사장공(太師張公)의 부인이었다. 두 아들이 있어 큰 아들은 송(宋)의 자사(刺使), 즉 요즘으로 치면 장관이고, 둘째 아들도 정승 벼슬에 올랐다. 두 아들이 어린 시절 대혜종고 선사의 스승인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선사에게 참예하고 마음 닦는 법을 배워 익히면서 벼슬한 이후에도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했다. 그들의 어머니는 30세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이래 40여년간 집안에 살면서 일심으로 수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참구한 바를 게송으로 썼으니 다음과 같다.

夢跨飛鸞上碧虛(몽고비란상벽허)
始知身世一遽廬(시지신세일거려)
歸來錯認邯鄲道(귀래착인한단도)
山鳥一聲春雨餘(산조일성춘우여)

꿈에 난새를 타고 날아 푸른 허공에 올랐다가
비로소 이 몸뚱이 한 세상이 한 개 초라한 오두막임을 알았네.
정체 모를 꿈길에서 잘못을 알고 깨어 돌아오니
산새의 한 소리에 봄비 소리 울려가네.

흔히 말하기를 한 인생 사는 것을 일장춘몽이라 한다. 꿈을 꾸다 깨고 나면 또 다른 꿈이다. 그 중에도 봄꿈은 화려하고 행복하지만 깨고 나면 더 허망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꿈이 꿈인 줄 모르고 꿈에 취해 꿈속에 살아간다. 그 꿈을 꿈인 줄 아는 것이 도이다. 꿈인 줄 알면 꿈을 꾸는 주인공을 찾는 것이 화두참구(話頭參究)이다.

국태부인은 과부가 되어 두 아들을 길러 요즘 같으면 총리와 장관으로 출세시키고 정숙한 아녀자로서 국가 사회의 모범이 되어 황제로부터 진국태부인이라는 표창을 받았으니 이 세상에 더 이상의 구할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세상과 이 몸이 꿈인 줄 알고 40년간 무자(無字) 화두를 오로지 한 생각으로 참구 수행하다가 하룻날 밤중에 홀연히 사무쳐 깨달아 게송을 짓게 된 것이 위와 같다. 다시 말하면 꿈에 난새를 타고 푸른 허공에 올랐다 했으니 꿈이란 이 세상이요, 난새를 탔다는 것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두 아들의 출세와 자기 자신의 영달을 말한다.

난새는 신령스러운 새로서 봉황의 일종으로 털은 오색을 갖추었고 소리는 오음(五音)이라 하는 최고의 새이다. 이 새를 타고 높이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 세상이 오두막 판잣집 한 채에 불과하고 그 판잣집에 사는 자신이 어떤 영화를 누리더라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는 것이다. 이 초라한 꿈을 깼다는 비유를 한단도(邯鄲道)라 했다.

한단은 춘추전국시대에 조나라 수도인데 노생(盧生)이라는 사람이 한단의 수도에 올라가 여옹도사(呂翁道士)를 만나 잠깐 그 분이 가지고 다니는 베개를 빌려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부귀공명과 영화를 누렸으나 잠을 깨고 나니 잠깐의 꿈이었다는 진리를 비유하였다. 현상의 생활을 꿈으로 인식하는 정견이 도(道)의 시현(示現)이라는 것이다.

국태부인은 이 한산도의 본질을 알지 못하다가 참으로 알아 깨치고 돌아오니 산새 한 소리에 봄비 소리 울린다고 하였다. 이 마지막 구절에 오묘한 오도의 활구(活句)가 들어 있는 것이다. 부인은 선교(禪敎)를 넘나들며 수행하여 깨쳤다. 교는 마음을 깨치는 길이요, 선은 마음에서 마음을 깨치는 길이라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49년을 고구정녕하게 설법한 교는 생로병사고(生老病死苦)에서 헤어나지 못한 중생에게 불멸(不滅)하는 불성(佛性)이 있어 이를 바로 보고 깨쳐서 다 같이 부처가 되자는 것이고 이 가르침의 실질인 마음을 수많은 제자들에게 읊어 보여준 사실이 염화시중(拈華示衆)이다. 유일하게 이를 터득하여 바로 알아 응답한 제자가 가섭 존자였고 가섭의 미미소(微微笑)에 부처님이 이심전심(以心傳心)하지 않았는가.

진국태부인은 경전을 읽을 때, 문자에 매이지 않고 마음을 무자 화두에 두고 읽었기에 다음 게송을 지었고 이를 대혜종고 선사가 보았다.

逐日看經文(축일간경문)
如逢舊識人(여봉구식인)
莫言頻有礙(막언빈유애)
一擧一回新(일거일회신)

날마다 경전을 보노니
옛날 아는 사람을 만난 것 같네.
자주 걸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한 번 보면 한 번 새로우니라.

이 몸이 있어 마음을 담았기에 이 몸을 조촐하게 계율로 가꾸어야하고 이 몸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있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게 되어 있으니 이 육근육식(六根六識)이 안으로 되돌아 마음의 주인, 즉 자성으로 반조되어야 한다.

진국태부인은 날마다 경전을 보았고 경전의 말씀을 보고 또 봐도 늘 새롭고 친근하여 오래오래 사귄 친구를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위 두 게송에 오처(悟處)가 분명하므로 대혜종고 선사가 인가(印可)했다. 인가는 털끝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치밀하기는 서릿발 같아서 친소(親疎)가 없고 가감(加減)에 사정이 없다.

대혜종고 선사는 12세에 절에 들어가 5년간 행자생활을 하다가 17세에 중이 되었고 여러 선방(禪房)에 다니며 수행하고 걸출한 선지식들에게 참구의 종지를 거래하였다. 설두중현의 <송고백칙(頌古百則)>을 정리하여 <벽암록(碧巖錄)>을 지은 원오극근 스님의 법을 이었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지었다. 이 대혜종고 선사에게 일개 부녀자가 인가를 받았다니 오늘을 사는 우리 불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개탄하고 분개, 정진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 싶다.

범인의 사정으로 서른에 과부가 되었으면 불쌍하다 할 것이고 개가를 할 생각을 할 것이다. 또 두 아들을 기르고 공부를 시키자니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상을 다 겪고 이행하면서 집안을 그대로 수행처 삼아 화두참구 하여 마침내 견성오도한 것을 남의 일로만 여길 것이 아니다.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나도 견성오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심(信心)이요, 나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하는 것이 분심(奮心)이다. 이 마음을 내서 지속하면 누구든지 진국태부인과 같이 견성오도하여 선지식 스님에게 인가 받을 수 있다.

      지허스님 (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