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은 <해동불교대학장, 중앙종회의원>

▲ 대은스님 <해동불교대학장, 중앙종회의원>

일본은 지난해 12월 31일 부산의 일본총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 설치 이후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 등을 일시 귀국시켰으며, 한일 통화 스와프 협의를 중단하고 고위급 경제 협의도 연기하는 등 우리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아베신조 일본총리는 NHK방송을 통해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간 신뢰관계가 없어지면서 통화 스와프 협상 재개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한일 합의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통화 스와프로 빌려준 돈도 돌려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90년대부터 위안부문제는 일본에서 보기에는 아주 껄끄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위안부에 대한 연구 등으로 자신들의 과거에 행한 일에 대해서 피해자인 당사자들이 일어난 이상 없던 일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일본정부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고 우겨도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한 피해자인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일본의 우경화가 심화하면서, 특히 자신들의 역사를 수정하는 아베정권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면서도 자신들 역사의 ‘치부’라고 여겼다. 어쨌든 종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종결해야 할 과제이지, 애초부터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죄로 문제를 풀 의도는 없었다고 본다. 그래서 기습적인 ‘합의’를 본 것이다.

결국, 일본정부는 당사자에 대한 진정한 사죄도 한국인들과의 ‘화해’를 향한 것도 아니어서 한국인에게 새로운 ‘분노’를 유발했다. ‘돈’을 내놓으면서도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한 배상금이 아닌 치유금이라고 했다.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없지만 시끄러우니까 돈을 내서 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면 왜 돈을 내놓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식 문제 해결 방법이다.

위안부할머니들이 요구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진정한 사죄와 명예회복, 인간으로서 존엄성의 회복이다. 자신들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밝히는 ‘용기’로 인류에게 다시는 자신들이 당한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희망’을 위해 ‘희생’한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일본정부는 다시한번 ‘돈으로 후려치는 굴욕’을 안겨줬다.

위안부할머니들에게 ‘돈’이라는 무기를 써서 입을 틀어막는 ‘폭력’을 행하고 있다. 일본정부에게 하청을 받아 위안부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본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합의’했다는 것은 ‘공범적 관계’다. 위안부문제를 여기서 돈을 받고 끝낸다는 것은 치욕의 대물림이며 희망을 쳐부수는 일이 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 대통령의 4강 외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특사 중에서도 문희상 대일 특사가 가장 먼저 귀국하였다. 대통령의 친서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우리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일본 측에서도 이해한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일 셔틀 외교 복원 가능성도 시사했다.

문희상 특사는 먼저 경색됐던 한일 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한일 정상 간에 자주 만나고, 빨리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제안을 우리가 했는데 일본에서 환영과 지지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민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고, 일본측도 그 뜻을 이해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우리 측에서 협상 파기를 꺼내거나 재협상을 논의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위안부 문제를 미래 지향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자고 합의했다고 밝혔는데 양국의 입장 차이를 서로 이해하는 수준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협상을 파기하지 못한다는 일본의 입장도 달라지지 않았고 부산과 서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이전문제를 원만히 처리하자는 의견도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발전이 없는 ‘위안부 문제’를 보면서 답답했다. 돈으로 역사를 청산하려는 태도보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재협상을 추진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우리 국민이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일본에 분명히 전했다는 점 자체로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재협상을 통해 ‘합의’의 수정 또는 파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상황을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것이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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