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더라도 육신은 충실히 일하고 마음은 참구 일념 하는 것이 ‘참된 수행’

초심자는 좌선에 길들여지기 전이므로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에 상관없이 화두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몸에 화두가 익혀지면, 지옥에 가면 지옥이 마르고 아귀(餓鬼)가 되면 스스로 배가 가득 부르며 개나 소의 축생이 되어도 대 지혜를 얻게 된다. 그러니 대도를 성취한 경허스님처럼 아무 일 없이 법열(法悅)에 젖어 저절로 노래가 나오게 된다. 바로 이 길을 가르치기 위해 백장회해 스님이 백장청규를 마련했다.

육조대사가 처음 방아를 찧으며 참구를 했다거나 방거사의 식구가 대바구니를 만들며 참구하는 것이나 진태부인이 과부 40년에 두 아들을 길러 벼슬에 오르게 하며 일심으로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에 이른 일 모두 일상생활은 육신의 동정에 맡기고 안으로 마음을 챙겨 화두 참구에 분발했기 때문이다.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가 인연 따라 모였다. 인연 따라 흩어지는 것. 놀려서 무엇 하겠는가. 마음은 빈 밭 같아 놔두면 잡초만 우거져 폐허가 될 뿐이라. 열심히 수행하는 것 이외에 더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육신은 일하고 마음은 참구하는 조화의 아름다움이 멋진 인생일 테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즐기는 멋이야말로 최고의 멋이고, 말이나 글, 혹은 도(道)의 지위와 명예에 얹혀 겉모양만 장식하는 멋은 겉멋이자, 가짜 멋이다. 스스로를 직시하고 제불조사(諸佛祖師)를 살펴 끊임없이 안에서 마음을 찾는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알아주느냐의 여부는 수행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말 없는 하늘과 땅이 알고 제불조사가 소리 없이 찬탄하면 그만이다. 세상이 알아주는 도인은 인생이 끝나면 소멸되고 해가 지날수록 잊힌다. 그러나 참 수행자의 도는 백년 천년이 지나도 그 광채가 우주를 휘돌아 구도자에게 무궁하다.

진실하게 수행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땐가 그 끝이 오고 그 끝에 역대 조사들처럼, 방거사나 경허성우 스님처럼 태평가 오도송(悟道頌)이 스스로 나온다. 멀거나 가깝게 선지식이 있으면 찾아가서 자기가 부른 태평가가 큰 평안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를 점검 받는 것이 좋다. 방거사가 석두스님과 마조대사를 찾아가 깨달은 바를 점검받고 오도송을 지어 바쳐서 인가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혹 이를 만한 선지식이 없으면 그냥 오도송을 지어 두면 언젠가 뒷세상에 명안종사(明眼宗師)의 눈에 들어올 것이다. 금이 금인 줄 모를지라도 불변하는 금을 판단하는 선지식이 훗날 어느 때던 있다. 도를 이룰 것이 걱정이지 선지식이 있고 없고는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방거사의 가족처럼 대를 베어다 바구니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 호구지책을 하며 마음은 참구 일념하는 것처럼, 직장인은 직장 일을 하며, 사업자는 사업을 하며, 농사일, 상업일, 공업일, 부엌일, 육아 등등 어떤 일을 하더라도 육신은 충실히 일하고 마음은 참구 일념 하는 것이 참된 수행이다. 자기 집에서 금반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일상생활 속의 생각마다 자나깨나 금반지 둔 곳을 찾는 것처럼 수행자는 한 찰나로 놓치지 말고 마음은 즉 화두에 몰두하는 것이 본분이다.

방 거사 이전에 중국에 부대사(傅大士 497~569)라는 사람이 있었다. 성은 부(傅) 씨요 이름은 흡(翕) 이다. 부대사의 대사란 보리살타 끝에 마하살(摩詞薩)이라는 극존칭이다. 대사는 부처님 다음가는 성인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등의 보살이다.

16세에 유(劉) 씨와 혼인하고 보건(普建) 보성(普成) 아들 둘을 두었고, 24세 때 인도 스님 숭두타(崇頭陀)를 만나 암자를 짓고 이름을 ‘쌍수림하당래해탈선혜대사(雙樹林下當來解脫善慧大士)라 자칭했다.
낮에는 남의 집에 가서 품팔이로 식구를 부양했고 밤에는 정진 참구에 열중했으며 닦은 바를 아내 묘광(妙光)과 이야기하였다. 이와 같이 7년을 돈독하게 정진한 뒤 사방에 소문이 자자하므로 승속은 물론 전국에 명성을 떨친 그 큰스님들까지 모여들어 법문을 들었다. 법을 펴니 양무제(梁武帝)가 와서 문답하고 지방관서에게 정기적으로 공급을 바쳤다.

535년 중운전(重雲殿)이라는 큰 법당에서 <반야삼혜경> 강설을 일상적으로 하니 신심남자와 신심단월이 구름 모이듯 했다. 태청 2년(548)에 단식분신공양(斷食焚身供養)을 서원하였으나 대중이 극구 만류하므로 미루다가 결행할 뜻을 숙이지 않으니 마침내 제자 19명이 대사 대신 몸을 태워 분신 공양하였다.

이에 대사는 서원을 돌이키고 천가 2년(561)에 송산정(松山頂)에 올라가 7불에게 참배하고 태전 1년(569) 1월 열반했다. 이후 제자들과 단월이 등상(等像)을 모시고 오상대사(烏傷大士)라 하였다. 대사의 저서에 <부대사록> 4권, <심왕명> 1권이 있고 금강경 찬(贊)을 실은 <금강경 오가해(金剛經五家解)>가 있다.

<금강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49년 설법 가운데 무려 21년이나 설하신 ‘부처님 가르침의 심장’이라 한다.
<금강경>에 의하여 수행해야 할 불법의 유무(有無)가 결정된다 하겠다. 그렇기에 이미 육조혜능 대사 때까지 주석서만 무려 800여종이 넘었다 하며 그 중에 다섯 분의 해석을 뽑아서 수록한 것이 <금강경오가해>이다

오가해의 시작은 부대사의 찬(贊)이고 다음이 육조 선사 구결(口訣)이며 그 다음이 규봉종밀(圭峯宗密)선사의 찬요(纂要), 그 다음이 야부천(冶父川) 선사의 송(訟), 마지막이 예장종경(豫章宗鏡)스님의 제강(提講)이다. 부대사 다음의 육조혜능 대사의 구결(口訣)은 입으로 전하는 <금강경>의 비결을 쓴 것이며 규봉종밀 스님의 찬요는 <금강경>의 요점을 보아 썼으며 종경대사의 제강은 금강경의 중요한 뜻을 간추려 쓴 것이다.

조선 전기의 함허득통 대사가 이 다섯 분의 해석에 자신의 견해를 쓴 설의(設誼)로 <금강경>의 옳은 것을 말하므로 <금강경오가해설의>가 되었고 2권으로 구성돼 1457년 세조의 명으로 간행된 바 있다. 함허 대사의 설의까지 합하여 <6가해>라고 하기도 한다.

800종이 넘었던 <금강경> 해석, 그 중 대표적인 해석을 하신 다섯 분의 <5가해>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는 부대사의 예찬이 그 첫 번째이다. 과연 이 마음에 도가 있는 것이 틀림없고, 도를 깨치는 데에 꼭 정해진 법칙이나 자격에 대한 구별과 집착은 소용 없는 것이다.

〈금강경〉은 반야의 공(空) 사상으로 보살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불자들 중 읽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드물 것이나 무궁무진한 그 뜻을 아는 사람은 지극히 귀하다.
<금강경> 첫 구절에 “반식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라는 대목이 있다. 이는 “공양을 마치시고 옷과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가부좌로 앉으셨다”는 뜻이다.
밥 먹고 그릇 챙기고 발 씻고 앉았다는 것이 어두운 우리 중생에게는 아무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를 깨친 분에게는 평범하게 보이는 사실에 큰 뜻이 있음을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행인은 평범 속에 비범이 있고 비범 속에 평범이 있는 혜안이 있어 한 찰나에 우주가 생멸(生滅)이 뚜렷하기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실체를 알아본다. 낮에 품팔이를 하고 밤에 정진하면서 가정 속에 살았다는 부대사의 <금강경> 해설 첫 대목을 보면 어떻게 실체를 아는지 살펴볼 수 있다.

法身本非食 應化亦如然(법신본비식 응화역여연)
爲長人天益 慈悲作福田(위장인천익 자비작복전)
收衣息勞慮 洗足離塵緣(수의식노려 세족이진연)
欲說三空理 跏趺示入禪(욕설삼공이 가부시입선)

법신은 본래 먹지 않고 응신과 화신도 이와 같거늘
인간과 천상의 영원한 이익을 위해 자비로 복밭을 지었도다.
옷을 거두어 번거로운 생각을 쉬고 발을 씻어 티끌 인연 떠났네.
삼공(三空)의 이치를 말하고자 가부좌로 선(禪)에 드는 것 보였도다.

삼공(三空)은 삼혜(三慧)이니, 문혜(聞慧)는 보고 듣는 지혜이고 사혜(思慧)는 생각의 지혜이며 수혜(修慧)는 닦아서 얻는 지혜이다. 품팔이꾼도 정진하여 도를 얻으니 일상의 평범 속에 듣고 보고 생각하고 닦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그냥 지나쳐 보고 듣지 말고, 그냥 지나쳐 생각을 놓치지 말고, 그냥 지나치고도 닦는다고 해서는 안 된다. 보고 듣는 주인이 있고 생각하는 주인이 있어 이 주인으로부터 반조(返照)되어야 한다. 주인으로부터 되돌아 비쳐보면 살아있는 삶이고 주인이 주인을 모르면 주인이 죽은 것이다.

          지허스님 (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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