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지음 , 북스타 刊, 값 20,000원

현직 외교관이 쓴 중국 역사 문화의 원류 서안의 ‘모든 것’
불교구도, 문명사, 유적, 실크로드, 관광지 등 8가지 주제로써 조명

오랫동안 중국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외교관직을 수행했고, 중국 유학과 주중 공관 근무를 합쳐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중국 전문가 이강국 주 서안 총영사가 고대 13개 왕조의 수도로서 화려한 유적들이 즐비한 ‘서안(西安)’을 소개한 역사문화 기행서 <서안 실크로드 역사문화 기행>을 최근 펴냈다.

저자가 1994년과 1996년 그리고 2000년 서안을 방문했을 때 느낀 것은 경탄 그 자체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진시황’, ‘초한전기’, ‘양귀비 비사’ 등 많은 역사 드라마를 보고 역사책을 읽으면서 중국 역대 왕조들의 역사와 인물들에 대해 탐구했다.

지난 2015년 4월에는 서안에 부임하면서 서안과 주변을 좀 더 자세히 돌아보게 되었고 이곳이 중국 역사문화의 보금자리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강국 총영사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8가지로 서안의 특징을 묘사했다.

첫째, 문명의 보금자리이다. 황하가 섬서성(陝西省)을 휘돌아 흐르며 장대한 진령(秦嶺)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풍요로운 관중평야가 자리하고 있어 일찍이 서안은 오래도록 평안하라는 뜻의 장안(長安)이라 불렸고 문명을 발전시키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유구한 역사 속에서 중국 문화에 외래문화를 흡수하고 융합하여 선진 문명을 만들어 내는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수준 높은 문명을 꽃피웠다. 갑골문자, 청동기 금문에서 시작된 한자는 문명의 발전에 눈부신 역할을 하였다.

▲ 이강국 주 서안 총영사.
둘째, 역사의 보금자리이다. 고대 13개 왕조의 수도였으며 특히 주(周), 진(秦), 한(漢), 수(隋), 당(唐) 등 대제국이 도읍을 정하였다. 진(秦)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였으며, 한(漢)은 북방 유목민족과의 대결 속에서 실크로드를 개척하여 동서양 교류를 촉진시켰다.

수(隋)는 5호 16국, 남북조로 수백 년간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였다. 당(唐)은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대제국으로서 북방 유목민족의 질박하고 거센 문화와 한족의 화려하면서도 실용적인 문화를 서로 융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중국 문화를 창조했으며 동아시아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셋째, 유적 · 유물 참관의 길이다. 세계의 8대 경이 중의 하나로 꼽히는 병마용은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나오는 서안 성벽은 여러 대의 마차가 동시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하다. 비림박물관에서는 ‘비석의 숲’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수많은 명문 비석을 만날 수 있다. 섬서역사박물관은 문물 수량과 종류, 그리고 다양성과 가치 등 여러 측면에서 독보적이다.

넷째는 관광의 길이다. 양귀비가 노닐었던 화청지에서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은 백거이의 시 『장한가(長恨歌)』가 화려한 쇼로 재현되었다. 또한, 대안탑 광장을 마주하여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조성된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 거리는 대당부용원, 곡강 유적지와 조화를 이루면서 수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 현장법사와 더불어 중국 불교의 2대 역성(二大譯聖)으로 꼽히는 구마라습이 정진한 서안 초당사에 있는 구마라습 사리탑.
다섯째, 불교 구도의 길이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된 이후 많은 인도 고승들이 오고 법현, 현장 등 스님들이 직접 인도에 가서 구법을 하면서 서안은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국의 8대 불교 종파 중 6개 종파가 서안에서 생겼다.

황제가 법문을 듣던 법문사(法門寺), 장안 최고의 밀교(密敎) 사찰인 대흥선사(大興善寺), 현장법사와 더불어 중국 불교의 2대 역성(二大譯聖)으로 꼽히는 구마라습이 정진한 초당사, 도선(道宣)스님이 수행하며 불법을 전수하던 정업사, 대안탑이 있는 대자은사, 현장법사 사리탑을 비롯하여 원측 사리탑 및 규기 사리탑이 있는 흥교사, 의정스님이 인도에 구법한 후 불경 번역에 정진한 천복사 등 이름 높은 사찰들이 즐비하다.

여섯째, 실크로드의 길이다. 비단으로 대변되는 동서양 간 교역의 길이자 문명 교류의 길로서 역사상 가장 선명한 의미의 발자취를 남겼다. 중국에 불교를 전하게 되면서 고승들이 오가게 되는 주된 길도 실크로드였다. 그래서 실크로드에는 많은 문화유산들이 축적되었다. 곳곳에 널려 있는 유적지와 명승지는 흥미진진했던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고대 서역 남북로가 갈라지는 실크로드 요충지였던 돈황은 세계적 불교문화의 보고라고 일컬어지는 막고굴(莫高窟) 석굴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일곱째 중국 혁명의 길이며 마지막으로 한중 교류의 길이다. 국제적이고 개방적이었던 당나라 때에 한중 간 교류가 빈번하게 전개되어 구법승과 유학생들이 장안에 와서 활동하였다. 그래서 서안과 주변 곳곳에는 한국 선현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강국 총영사는 “서안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병마용과 서안비림박물관, 그리고 섬서역사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을 보았다. 사전에 공부가 좀 되어 있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면서 “이 책이 중국 역사문화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나아가 한중 양국 간 교류의 역사적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로서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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