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살거나 세속에 살거나 어떤 생활을 하더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지니고 마음공부 하는 것이 중요

인도의 숭두타(嵩頭陀) 스님을 만난 부대사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부대사가 명성을 떨치게 될 즈음, 양나라 무제(梁 武帝, 464~549년)의 초청을 받게 되었다. 부대사가 선지식이니 <금강경>을 각별히 법문해 달라고 지공(誌公) 선사를 통해 부탁한 것이었다. 지공선사는 양무제가 천하를 다스리는 막중한 황제 자리에 있으며 신심이 돈독하나 다만 자기 속에 있는 참된 나를 찾는 공부에 미약하므로 부대사의 <금강경> 법문을 듣게 하여 발심하게 하려한 것이다.

양무제는 불심이 매우 강한 불자였기에 <금강경>을 읽지 않았을 리 없었고 수없이 읽어 그 내용을 모를 리도 없었다. 그러나 지공선사는 양무제로 하여금 부처님이 <금강경>을 통해 말씀한 참 주인의 확철대오한 경지의 길을 알게 하고자 했다.

초청된 부대사는 법상(法床)에 올라 잠시 후 주장자로 경상(經床)을 한 번 치고 내려왔다. 이것이 양무제와 지공선사 앞에서 설한 부대사의 지극한 <금강경> 법문이었다. 이를 ‘휘척강경(揮尺講經)’이라고 한다. 말을 사용한 풀이식의 법문만을 들어왔던 양무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법상에 올라 한 번 내리친 일이 어찌 <금강경>을 완전무결하게 강설한 일이냐는 것이다.

지공선사가 “폐하! 아시겠습니까?”라고 물었지만 양무제의 모르겠다는 답에 지공선사는 “금강경 법문을 다 마쳤습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언어와 문자만을 설법인줄 여겼던 양무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과 글은 알았지만 언어와 문자 이전의 <금강경>은 알지 못하였다. 밥은 알지만 쌀은 모르고, 샘은 알지 못한 채 강(江)만 아는 소치이다. 이것이 양무제의 안타까운 중생의 한계였다.

또 어느 날은 부대사가 머리에 도학자의 관(冠)을 쓰고 떨어진 승복을 입고 유학자(儒學者)가 신는 신을 신고 양무제를 만나러 갔다. 양무제가 부대사가 쓴 관을 보고 도교(道敎)의 학자인지 묻자 부대사는 신고 있는 신을 가리켰고 다시 양무제가 유학자인지 묻자 떨어진 자기 몸의 승복을 가리켰다. 양무제가 스님인지 다시 묻자 이에 부대사는 다음과 같이 노래로 대답했다.

道冠儒履釋衲衣(도관유이석납의)
和尙三家爲一家(화상삼가위일가)

도교의 모자, 유교의 신발, 승려의 옷은 모양일 뿐
마음 수행승은 세 가지 종교가 한 집안이라네.

무릇 중생이란 모양으로 구별하고 자신만의 관념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 이기적인 결정을 한다. 이 넓고 높은 세상을 좁고 낮게 살다가니 가련한 존재이다.
종교란 ‘옛날’과 ‘지금’이 없는 불멸의 가르침, 가장 높은 가르침이란 말이다. 어느 종교든 자기 분상의 교리 상 우열(優劣)은 있을지라도 교리를 통달한 후에는 한 집안과 다름없다.

부대사는 양무제가 깊은 불심으로 온 나라에 많은 불사를 이루었으니 이제는 신앙에 그치지 않고 총체적인 차원의 지혜를 깨우치길 바랐다. 유교나 도교나 불교를 형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치를 통찰하여 큰 차원에서 회통하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양무제는 역시 깨우치지 못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분별된 외관의 현상이 현상 그대로이던가. 그대로인 것을 아는 주인, 내면의 ‘나’라는 존재가 현상 그대로인 것을 헤쳐서 다시 보면 외관의 분별된 현상이 현상의 본질로 돌아가고, 보이는 현상이 결국 현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밖으로 나타난 모양을 보면 천차만별(千差萬別)이지만 내면의 ‘나’가 사유(思惟)를 통해 꿰뚫어보면 분별된 모든 모양이 본질에 들어가니 그 모두가 하나에 들어있는 것이다.

부대사가 말한 스님들이란 자기 스스로와 도가 높은 다른 수행자로서, 천차만별의 분별을 내면의 ‘나’가 진리의 성품으로 보며 모든 분별의 현상은 성품에서 나왔으므로 이 성품이 원융무애(圓融無?)한 본래 하나인 것을 안다. 이 본래 하나는 이름도 형상도 없이 일체가 끊어졌기에 고요하며 하나라 할 수도 없기에 나도 없고 대상도 없는 경지를 철저하게 닦는 사람들이다.

방 거사는 이 경지를 들어 ‘부시현성 료사범부(不是賢聖 了事凡夫)’라 하였다. 성현이 아니라 일을 마친 범부라니, 성현은 무엇이고 부처는 무엇인가. 이마저도 분별이라 할 것인데 하물며 수행을 마치는 일에 중이 무슨 소용이며 범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중도 범부도 모두 겉으로 드러난 형상이며 종교라 하지만 수행하여 깨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수행이 일이고 생명은 자성이다. 일을 마치려면 안이비설신의를 잘 간수하여 마음 밖의 현상을 마음 안의 거울로 비쳐봐야 그 정체가 보인다.

이를 부처님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열반경(涅槃經)에 운(云)하여, 문불문(聞不聞)이요 불문문(不聞聞)이요 문문(聞聞)이요 불문불문(不聞不聞)이니라.
(열반경에 말씀하시기를, 듣는 것은 듣지 않는 것이요 듣지 않는 것이 듣는 것이며 듣는 것은 듣는 것이고 듣지 않은 것은 듣지 않은 것이다.)

우리에게 갖추어진 본래 있는 불성이 마음의 귀를 통해 밖의 소리를 들으면 듣는 것이 듣지 않는 것이고, 듣지 않는 것이 듣는 것이며, 듣는다는 것은 본래 있는 불성에서는 듣고, 듣는 것이 듣지 않고 듣지 않는 본래의 고요다. 본래의 고요에 들면 듣고 듣지 않음이 하나이고 그 하나는 하나가 아닌, 모든 모양과 현상의 일체가 끊어진 자리이니 이를 적멸이라 한다.

어찌 듣는 것 뿐이랴. 안이비설신의가 다 이와 같으며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이 모두 이러하고 밥 먹고 옷 입고 자거나 깨거나 꿈 속 또한 이 안의 일이다.
그래서 참 수행자는 좌탈입망(坐脫立亡)하기도 하고 서서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행주좌와어묵동정 간에 화두일념(話頭一念)하다 평범하게 생사인연(生死因緣)을 맞기도 한다.

좌선하던 방 거사는 그 지역의 절도사였던 우적(子顆)이 문안을 온 자리에서 “일체의 존재는 비어있으니 없다고 관하고 있다고 보지 마시오. 잘 계시오.” 하고 선정(禪定)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했지 않는가.
수행 정진은 모든 일상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참선 이상 좋을 것이 없는데 참선이란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드는 일이다. 초심자는 밖이 시끄러우면 마음도 따라 시끄러워지거나 고요하려고 애쓰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종래에는 포기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시중(市中) 보다는 산과 절을 찾는 것이다. 절이 세속과 떨어져 산 속에 있는 것은 심오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번뇌망상을 떠나기엔 조용한 자연이 적합하기 때문이요, 불교의 본질을 밝히는 나 안의 ‘참나’, 불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절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지혜와 자비가 구족한 불상이라는 형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저 부처님과 같은 불멸(不滅)의 지혜와 자비가 갖추어져 있으니 세속의 5욕(五慾), 즉 재욕(財慾), 색욕(色慾), 식욕(食慾), 명예욕(名譽慾), 수면욕(睡眠慾)과 일체의 번뇌 망상을 버리고 나의 자성(自性)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수행하는 스님들이 절에 기거하는 것은 견성성불 하겠다는 초발심을 초지일관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비해야 하기에 계율을 지키고 검약지족으로 근면 성실한 수행을 일상으로 행하며 고처의 암자에서 고행(苦行)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절을 도량(道場)이라 하는 것은 ‘도를 닦는 장소’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러나 도량은 절대로 마음 밖의 어떤 곳에도 있지 않고 이 마음 안에 있다. 산에 살거나 세속에 살거나 어떤 생활을 하더라도 마음을 고요하게 지니고 마음공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에 살면 주변이 고요하여 밖의 현상과 충동에 약하고 세속 공부는 주변이 산란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쉽지 않다. 주변이 산만하여도 마음의 고요를 잃지 않거나 마음의 고요가 어떠한 산란함에도 고요하면 이를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경계라 한다.

            지허스님 (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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