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종의 정신으로 종단프레임을 과감하게 바꾸고 환골탈태 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 불지종가(佛之宗家)의 역량과 위의를 겸비한 한국불교의 중심종단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취 임 사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는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공사 간 일상 업무에 바쁘신 가운데 소납의 총무원장 취임식에 동참하여 격려와 축하의 마음을 함께해 주시는 내외귀빈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태고종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워 온 한국불교 전통종단으로 일찍이 위정자의 망집(妄執)에 의해 발생한 불교 법난으로 인하여 교단이 분열되고 교세가 약화되는 등 숱한 질곡(桎梏)과 감인(堪忍)의 세월을 돌아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돌이켜 보면 오늘날 우리 종단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종권수호에 헌신한 명안종사(明眼宗師)의 원력과 종단을 끝까지 지키려는 종도들의 장한 신심이 하나로 결집된 결과라고 사료되어 종도의 한사람으로서 남다른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성하는 마음으로 작금의 우리 종단 실상을 반추해 보면 오랜 세월 인습화(因習化)된 수많은 적폐(積弊)와 불합리가 온존해 있음을 솔직히 부인할 수 없습니다.

승가의 근본인 수행정신의 이완(弛緩)과 법도의 실종, 승단의 무질서와 개인주의의 만연, 유유상종하는 사조직의 발호, 지도자의 독선과 무책임, 법치(法治) 소홀과 인치(人治) 중심의 종단운영 실태는 종도화합과 종단 발전을 저해하는 위험한 요소로 반드시 개선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난 한 때 뜻하지 않은 종단 내분으로 종력을 허비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종단 운영이 장애에 부딪치고 이로 말미암아 종단의 대외적 위상이 실추되어 교계는 물론 국가 사회로부터 주목과 신망의 대상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종단은 세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선조사의 적맥(嫡脈)을 계승한 정통(正統) 종단이요, 이념적으로 보살불교를 지향하는 대승교화 종단이며, 구조적으로는 사설 사암이 중심이 되는 협의체적 자율종단이 그것 입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정체성은 태고종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자 존재 이유이며, 종단 운영의 방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단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종책을 수립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소납은 종단 운영을 책임진 총무원장으로서 우리종단이 재도약하여 과거의 영광과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향후 종책 방향과 종단운영의 대강(大綱)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자 합니다.

▲ 제 26대 총무원장에 취임한 편백운 스님.

첫째, 종단 총화(總和)를 실현하겠습니다.

종단은 불지(佛旨)를 봉체하는 사부대중의 유기체적 수행공동체이며, 수행공동체의 중심에 있는 승가는 3인 이상의 복수 개념으로 화합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문제로 종도 간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은 승가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며, 더구나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을 갈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종단 발전을 저해하는 해종행위 입니다.

지금은 불신과 갈등으로 상처받고 실망하는 종도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포용하는 대승적인 화쟁(和諍)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조화, 원로 중진스님의 지혜와 경험, 패기를 가진 눈 밝은 젊은 납자의 용기와 순수성은 우리종단의 소중한 자산으로 종단발전을 촉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소납은 조속한 시일 내에 법난 이후 불가피하게 종단을 떠나 있었거나 여러 가지 사유로 종단으로부터 제약을 받고 있는 모든 사찰과 종도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종도의 지위를 회복하는 절차를 이행함으로써 종력(宗力)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종단 총화를 이룩하고자 합니다.

둘째, 종단의 각종 제도 및 조직을 재정비 하겠습니다.

국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존하는 모든 사회집단은 정해진 규범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종교단체 역시 교단 특유의 율법(律法)이 있고, 교단경영의 근간이 되는 법령(法令)이 존재합니다. 한국불교는 1938년 ‘조선불교조계종 태고사법’을 효시로 하여 이후 수많은 각종 법령이 파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종단은 정해진 법령(法令)이 홀시(忽視)되고 집권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종단이 운영되는 인치(人治)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하여 당연히 시정되어야 합니다.

금일 출범하는 새 집행부는 종단의 정체성에 입각하여 법과 제도를 합리적으로 정비, 보완하고 새로운 법과 제도에 기초하여 종정(宗政)의 비효율을 개선할 수 있도록 종단 조직을 발전적으로 재정비 하겠습니다.

셋째, 근본적인 종단 재정수급 대책을 수립하겠습니다.

현대사회는 물질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본말전도 현상이 팽배합니다. 불교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다루는 유심론(唯心論)적 종교인 것은 틀림없으나 물질의 충족 없이는 사회적으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고 인간적인 대접도 받을 수 없는 것이 작금의 세태 입니다.

우리종단은 전용할만한 기본재산이 전무할 뿐 아니라 사설사암으로 구성되어 재정조달의 태생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종단의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는 재정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산하에 3천3백여 사찰과 8천 승려 등 막대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단 재정문제는 지도자의 솔선수범과 종도들의 공심이 관건입니다. 종도의 중지를 모으고 신흥종단의 제도를 연구 분석하여 종단 실정에 맞는 합리적이고 실행 가능한 재정 구조를 수립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종단발전의 가장 큰 장애로 등장한 종단 부채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책임있는 관련 당사자와 재정 전문가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실효성 있는 대안을 강구하겠습니다.

▲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는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

넷째, 종단의 기본인프라 확충에 힘쓰겠습니다.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진리, 정의, 구생(救生), 평화입니다. 불교는 이처럼 궁극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개인적으로는 자아(自我) 완성이며, 사회적으로는 인류의 완성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불교종단은 이 같은 이상을 실천하기 위하여 교육, 포교, 사회복지를 3대 목적사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종단은 언필칭 전통종단을 강조하지만 법난 이후 지금까지 변변한 정규 교육기관 하나 없고 내세울만한 복지시설도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실로 면목 없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는 종단이 처한 환경과 여건도 문제이지만 중요한 것은 종단 지도자의 철학과 의지의 문제이며, 한발 더 나아가 종도 대중의 의식(意識)과 책임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의 깊은 각성이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앞으로 선암사 총림과 종립 동방불교대학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상설 연수원을 설립하는 등 장 • 단기 계획을 수립하여 기본 인프라 구축에 힘쓰겠습니다.

다섯째, 법난 극복으로 정통종단의 위상을 강화하겠습니다.

종교는 관념의 세계이며, 주관적 자기신념체계로 상대적 가치일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면 이는 분종(分宗)의 원인은 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정화(淨化)의 대상은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고 하여 상대를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것도 정치권력의 힘을 빌어 단죄하고 배척한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종단은 불교 정화라는 허울 좋은 미명과 이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부당한 정치권력의 핍박으로 교단이 분열하고 삼보정재가 탕진되는 수모를 겪어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종단이 처한 환경과 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것도 불행했던 불교 법난에 그 원인이 있음을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교단을 분열시킨 법난의 책임자는 반세기가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정화 운운하며 구시대적 발상으로 하나 남은 총림마저 차지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접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법난 극복을 운위하는 까닭은 이미 수십 년 동안 고착되어버린 현상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역대 조사스님으로부터 전수받아 수백 년 동안 종도의 혼(魂)과 맥(脈)이 서려있는 태고총림 선암사만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굳건히 지키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동시, 한걸음 더 나아가 보다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로 지난날 정치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불교법난의 부당성을 법적 또는 사회적 수단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림으로써 한국불교 적자(嫡子)종단의 실체적 위상과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수행풍토를 조성하고 사회교화 사업의 외연을 확대 하겠습니다.

불교는 두 가지 대의(大意)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수행을 통한 지혜의 완성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수행으로 터득한 지혜를 실천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안심입명(安心立命)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 정신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 응화(應化)의 본원(本願)은 역시 중생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번뇌 없는 해탈이 불가능 하듯이 중생 없는 부처는 의미가 없습니다.

근래에는 승가의 질서가 혼탁하고 출가정신이 변질되어 수행자다운 수행자를 만나기 어렵고 그렇다고 사회교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보살행자도 보기 드문 현실입니다.
승려는 불교신앙의 사표(師表)이자 만인의 스승으로 수행을 빙자하여 중생의 고통과 세상의 불의(不義)를 외면하거나 반대로 지나친 사회활동에 집착한 나머지 수행을 소홀이 한다면 이 또한 수행자의 정도(正道)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취임사를 하고 있는 편백운 총무원장.

존경하는 종도 여러분!

21세기의 시대정신은 변화와 혁신이며, 우리종단의 대명제는 종단 중흥입니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 우리는 자생적 힘을 기르고 수준과 품격을 드높여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재 창종의 정신으로 종단 프레임을 과감하게 바꾸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여 불지종가(佛之宗家)의 역량과 위의(威儀)를 겸비한 한국불교 중심 종단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전시한 종책 방향의 대강은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 우리 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종단 중흥의 시금석(試金石)이며,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실현해야 할 필수조건인 것입니다.

종단은 종도가 주인이며, 종단을 대표하는 총무원장은 종단의 공복(公僕)으로 종단 발전은 오직 주인인 종도의 책임이며, 총무원장 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종단 중흥이 이룩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태고종도는 종단 주권자로서 주인정신을 발휘하여 안으로 잠자고 있는 의식을 스스로 깨워 일으켜야 합니다.

그릇된 편견에 치우친 나머지 현실에 안주하여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주저하며 그냥 이대로 가기를 원한다면 강자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경쟁 사회 속에서 어쩌면 멀지않은 장래에 종단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소납은 앞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종도의 눈높이에서 종도들과 더불어 소통의 장을 넓히고 정의와 상식에 기반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열린 종무행정을 추진함으로써 법과 원칙이 바로 서고 질서가 살아 숨쉬며, 인애(仁愛)와 화합으로 하나 되는 선진종단으로 거듭 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가지 첨언의 말씀은 소납이 총무원장으로 재임하는 이상 어떠한 경우라도 규범과 상식에 어긋나는 부당한 종무처리로 갈등을 유발하거나 종도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재임기간 동안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마치고 종도들의 흔연한 환송을 받으며 퇴장하는 성공한 총무원장이 되도록 마음을 열고 진심을 모아 적극 협조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우리 모두 손을 마주잡고 대동단결하여 화생(和生)과 개운(開運)의 새 역사를 함께 써 나갑시다.
종도 여러분께 불 • 보살님의 가피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취임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불기 2561년 9월 28일

                           제 26대 총무원장 편 백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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